뭔가를 써야 할 것 같아서, 잡담: 미야베 미유키의 외딴집, 캠프 트랜스, 신년 계획 등

01

10일까지 수정해서 넘겨야 하는 원고가 있어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외딴집]을 읽었다. 맞다. 회피용으로 읽었다. 크. ;;;

미야베 미유키의 책 중 베스트 3에 드는 책이다. 지금까지는 [모방범]과 [스냐크 사냥]을 가장 좋아했는데, [외딴집]을 추가했다. [외딴집]은 기존의 어떤 작품과도 다르다. 현대물과 에도시리즈의 느낌이 다소 다른데, [외딴집]은 그 어느 쪽과도 같지 않다.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었을 때,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물론 마지막 챕터 “마루미의 바다”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랬다간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 아니지.
미야베 미유키 소설 중 에도시리즈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02
마감해야 하는 원고는 “캠프 트랜스.” 맞다. 이태원과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다룬 원고가 1월 말이나 2월 초에 출간될 예정이다. 온라인 웹진으로 나온다고 하니 더 자세한 것은 그때 다시…
2009년 당시 이태원 포럼을 주관했던 ㅈㅎ 님은 이제 한숨을 돌리시려나… 원고가 그냥 묻히는 걸 무척 안타까워 했으니까.
03
올해 새로 시작하는 일이 있다. 박사과정도 그렇지만 이것 말고 더 무시무시한 일을 계획하고 있다. 퀴어 운동과 퀴어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대할 법한 일을 작당하고 있다. 누구나 기대하겠지만 누구도 참여하고 싶어하지 않을 그런 일이다. 이 일을 공동으로 기획하고 있는 나도 미친짓이라는 걸 안다. 이 일을 본격 시작한다면 정말 정신 없이 바쁠 듯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기획안이 나오면 역시나 이곳에 공개하지요(일 자체는 이미 기정사실). 많은 분의 관심과 도움 부탁드립니다.
04
3의 계획으로 새로운 일정을 잡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아.. 올해 하고 싶은 일(개인 프로젝트)이 몇 개 있는데 병행할 수 있을까?
05
며칠 분주한 일정이 있어 오늘은 종일 집에 있었다. 택배 받을 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집에서 원고를 수정하다가 잠깐 누웠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 매우 달고 맛난 잠이었다.

책, 잡담

01

닷새 동안 영문으로 110쪽 정도 읽었다. 얇은 단행본이면 한 권 분량이지만, 지난 8월부터 질질 끌다가 올해를 넘기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에 서둘러 읽었다. 닷새 동안 110쪽이면 많은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하루에 20쪽 정도 읽었을 뿐이다. 20쪽이면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평균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석사 3학기 이상이면 평소 읽는 분량의 평균치다. 책은 280쪽 가량인데, 9월에 다 읽겠다고 다짐하고선 12월에야 다 읽었으니 나도 참 게으르다.
지난 24일, 110쪽 정도 남은 분량을 올해 다 읽겠다고 다짐했을 때만 해도 힘들 거라고 짐작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그 만큼 게을렀고 공부를 안 했다는 뜻이다. 하루에 고작 10~20쪽 분량이 많다고 겁을 먹다니, 반성할 일이다.
책은 미국 트랜스젠더 역사를 섹스-젠더 개념의 변화로 짚은 내용이다. 미국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하는 두 권 중 한 권인데 이걸 이제야 다 읽었다는 점도 반성할 일이다.
다 읽고 나서, 저자를 질투했다. 이런 끝내주는 책을 쓰다니. 나도 언젠가 이와 같은 책을 쓰리라고 다짐했지만, 과연…
02
얼마 전, 김원일의 소설을 읽었다. 번역문이 아닌 문장을 읽고 싶었다. 책장에 마침 김원일이 있기도 했고, 김원일의 문장이 괜찮아 망설이지 않고 골랐다.
첨엔 달았다. 문장이 이렇게 달고 또 맛있을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동안 내가 어떤 문장을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뒤로 갈 수록 문장보단 내용의 비중이 커졌다. 그리고 지겨웠다. 단편집인데 실린 단편마다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어떤 단편에선 설교를, 혹은 주장을 하고 있다. 간신히 다 읽었다. 문장은 좋았고 내용은 좀 그랬다고 결론내리면 될까?
아, 읽은 단편집은 [오마니 별].
03
미야베 미유키의 고전 시리즈를 읽기로 하고선 못 읽고 있다. 고전시리즈 중 세 번째로 읽은 [메롱]이 마지막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통스러워서. 에도 시리즈의 다른 책을 읽을 때부터 감지하다가 [메롱]에서 확인했다. 현대물과 달리 고전물엔 ‘고통’이란 키워드가 작품 전반을 아우른다. 읽는 내내 힘들었다. 작품이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읽는 내내 이상하게도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더 못 읽고 있다. 언제 즈음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아니, 다시 읽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하다. 연달아 읽기는 힘들 듯하다.
04
그 와중에 앤 클리브스의 [레이븐 블랙]을 읽었다. 영국 추리 소설. 이거, 재밌다. 일본 추리소설만 읽다가 영국의 후더닛 소설을 읽으니, 묘하게 새로운 맛도 있고.
매그너스에게 감정이입하며 읽었는데 다른 사람은 어떠려나.
05
새해엔 책을 분양해야겠다. -_-;; 이번엔 진짜 과감하게 분양해야지.

‘오’에 집착하시는 미야베 미유키

요즘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를 읽고 있다. 『괴이』, 『혼조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를 읽었고, 지금은 『메롱』을 읽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읽고 있는 작품은 현대물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뭐, 재밌는 건 여전하고.
근데 불만은 여성 캐릭터 이름. 세 권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메롱』의 다에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여성 캐릭터의 이름이 ‘오’로 시작한다. 오린, 오엔, 오쓰타, 오리쓰… 이 정도는 약과다. 『메롱』에 에피소드 수준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이웃의 두 가족이 등장하는데, 그 집단에 속하는 네 명의 여성 캐릭터 이름이 오하쓰, 오슈, 오리쿠, 오시즈. 등장하는 귀신 다섯 중 여성 캐릭터가 둘인데 그들 이름 역시 오우메, 오미쓰. 나처럼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는 입장에서 이렇게 비슷비슷한 이름이 계속 등장하면 곤란한데.. ㅠㅠ
에도 시대의 모든 여성 이름이 ‘오’로 시작한 것도 아닐 텐데 일부러 이러는 것? 심지어 『괴이』, 『혼조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메롱』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이름이 상당히 겹친다. 이쯤되면 ‘오’로 시작하는 이름을 여럿 만들어 놓고 에도 시리즈물에서 반복해서 사용한다고 추정할 수 밖에… -_-;;
그나저나 에도 시리즈물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이름이 모두(한둘 예외는 있겠지만) ‘오’로 시작한다면 이것도 대박이겠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