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 갑자기 선생님이 보고 싶다.
안부를 물을 겸 겸사겸사 메일을 쓰는데, 내가 정말 석사과정을 공부한 학교와는 다른 학교에 진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못 만나는 관계도 아니고, 먼 거리도 아닌데 이 복잡한 감정은 뭔지…
02
십대 이반에게 한때의 감정이라고 말하는 일군의 반응에 통상의 대응은 ‘그렇지 않다’, ‘그럼 이성애는 한때의 감정 아니냐’로 요약할 수 있으려나. 비이성애는 한때의 감정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이성애를 규범으로 삼는 인식 자체를 문제삼거나.
근데 문득, 십대의 동성애가 한때의 감정이라고 쳐도 그것이 무의미한 감정인가란 의문이 들었다. 더 정확하게는 어떤 감정이 일시적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여러 논쟁과 별도로, 일시적 감정은 무의미하니 연구할 가치가 없거나 고민할 가치가 없는 것일까란 고민이다. 일시적이어서 연구할 가치가 없다면 우리가 연구할 주제는 무엇이지? 경제학 개념으로 ‘장기’는 우리가 죽고 난 다음의 시간이다. 그럼 일시적이지 않은 것, 즉 영구불변의 것만 연구하자는 것일까? 그런데 그런 게 있기는 할까? 그리하여 무엇을 ‘일시적’이란 수식어로 폄하하는지, 시간성은 어떤 식으로 위계를 가지는지, 규범적 가치와 시간성은 어떻게 위계적 가치를 재생산하는지…
아.. 공부할 거리만 늘어가는구나.. 흐흐.
안녕하세요 루인님. 저는 여성학쪽으로 공부를 하고싶은 학부생인데요.
평소 루인님블로그도 즐겨보고 많은것도 배우고 있습니다 ㅎ
저는 제가 장애를 가졌기때문에 장애여성쪽으로 공부를 해보고싶어요.
언젠가 루인님께서 트랜스젠더를 연구하면서 장애인과 연결점을 찾아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적이 기억나세요.
아직 그냥 그렇게하고싶다..라는 기분만 든 것이라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여성학과 검색하면 이대밖에 안나와서요.
혹시 제가 배울수 있는 교수님이나 학교를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제 메일주소는 younseon0402지메일입니다.
갑자기 사적일수도 있는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여성학과는 이대 여성학과 외에 서강대 여성학협동과정,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등이 있어요. 아울러 젠더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도 있고요.
국내에서 장애여성 이슈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은… 글쎄요… 저도 잘 아는 것이 아니라서요.. ;ㅅ; (사실 한국의 여성학과에선 이성애-비장애-비트랜스-여성과 관련한 연구는 가능해도 그렇지 않은 범주의 여성 이슈를 공부하는 건, 거의 독학에 가까운 노력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에요..)
아, 장애여성공감에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 이슈로 석사학위를 쓴 선생님이 한 분 있어요. 여성학협동과정에서 공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요. 공감으로 문의하면 저보다 저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어설프게 적는 것보단 좀 더 구체적인 조언을 주실 것 같아요.. ^^;
루인 님이 그 주제(02)를 연구하신다면 분명 멋진 연구가… 루인 님을 보면 잉여롭게 사는 제가 너무 부끄러워져요(…)
연구 이전에 일단 주위 사람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이성애자(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사람들)도 많은 경우 사춘기에 동성을 향한 비이성애 감정을 가지던데 좀 놀랍더라구요. 그런데 자신이 그런 감정을 가졌다가 -> 스스로를 이성애자로 정체화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걸 동성애는 미성숙 때문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좀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워요.
전 그저 고민만 하고는… 그것으로 끝이에요.. ;ㅅ;
욕심만 많고 실천은 없달까요.. 아하하. ㅠㅠ
사춘기 시절 비이성애 감정을 가졌다가 이성애자로 다시 정체화하는 그 과정을 면밀하게 연구해도 재밌겠어요! 그건 말 그대로 이성애자 되기 과정이고, 이성애가 자연스러운 정체성이 아니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거잖아요. 흐흐.
아니, 근데 그런 화법은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도 흔히 쓰이는 것 같아요.
“내가 전에 남자를 사귀었고 그때는 이성애자인 줄 알았는데……”
“내가 학교 다닐 때 여자를 사귀었고 그때 나는 레즈인 줄 알았는데…..”
변화하는 성정체성을 가졌다거나(그러니까 다 한때의 감정) 자신이 바이라거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문 듯.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남자를 사귀면 이성애자가 되었다가 여자를 사귀면 레즈비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흥미로워요. “~되었다가 ~되었다가”라고 쓰긴 했지만 이건 성정체성이 변화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정한’ 정체성을 찾았다는 의미로 쓰이는 듯. 이 사람을 사귀고 보니 이 사람이 내 (진정한) 짝이었네, 고로 나는 레즈비언이었네…… 뭐 이런…..(물론 반대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동성애 경험을 ‘지나가는’ 것으로 치부하죠; 얼마 전에 언론에 나온 연기자 변정수 님처럼;)
바이 혐오가 심하거나, 바이를 정체성 범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에선 정말이지, 이성애 아니면 동성애만 성적지향인 느낌이에요. 그러다 보니 바이는 일시적 정체성이란 범주에 속하지도 못 하네요.. ㅡ_ㅡ;;
그나저나 변정수 님은 무슨 말을 했나요..;;; 찾아 봐야 겠어요..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1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