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두 개의 카테고리가 있을 필요가 없다 싶었다. “삶~앎”은 삶과 구분할 수 없는 앎/앎과 구분할 수 없는 삶을 의미했는데, 그렇다면 “흑백으로 부르는 달의 노래”에 쓴 글은 삶과 동떨어진 글일까? 이렇게 단순하게 제기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다보면 카테고리를 구분하기 애매한 순간들이 많았다. “삶~앎”이라는 카테고리 이름의 문제였다. 이 구분은 무거웠고 불필요하게 “삶~앎”이 아닌 내용을 다른 식으로 구분 하는 폭력적인 잣대가 되었다.
그래서 아예 카테고리를 하나로 만들까도 했지만, 그랬다간 나중에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둘로 나누면 그나마 찾기 쉽지 않을까 해서;;;
새로운 카테고리 이름은 결국 몸이다. “몸” 뒤에 붙은 수사들은 불필요한 장식일지도 모른다. [몸에 핀 달의 흔적]은 처음부터 계속 있었고 루인이 좋아하기에 달을 넣었다. [몸을 타고 노는 감정들]은 정말 동어반복이다. 몸이 곧 감정이고 감정이 곧 몸이니까.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면, 감정은 곧 정치다. 감정은 이성에 대립하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체화된 지식/이데올로기의 반응이며, 몸의 언어다. 자신의 몸을 느낄 수 있는 언어와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반응은 즐거움/아픔(감정들)이다. 코미디를 통한 웃음은 정치적인 문제이지 인류 보편이 아니다. 또한 루인은 존재 자체가 정치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존재 자체가 정치적이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여기서의 “정치적”은 기존의 지배적인 경계/정상성과 갈등한다는 의미. 불편함, 불쾌함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건 민감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몸과 갈등하며 폭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카테고리 이름을 바꾸면서, 앞으로 어떻게 구분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