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나눈 얘기인데 여기서도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글로 정리합니다.
작년 가을 <여/성이론>에서 이론가 소개글을 청탁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이론가는 수잔 스트라이커Susan Stryker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고 하앍하앍하는 이론가지요. 후후. 수잔 스트라이커가 논한 트랜스젠더 이론을 소개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어찌하여 글은 지난 여름에 나왔습니다.
스트라이커를 소개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무엇을 소개할지는 쉽게 정했습니다. 스트라이커 글에 꾸준히 드러나고 있는 세 개의 주제, 트랜스젠더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역사, 그리고 동성애규범성. 앞의 두 가지는 제 연구와 공부 맥락에서 이제는 소개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저 자신, 트랜스젠더 이론을 공부하며 트랜스페미니즘 혹은 트랜스젠더 페미니즘에 초점을 맞췄고 거의 모든 글이 이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아울러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쓰겠노라고 떠들고 있고, “캠프 트랜스”를 출판하기도 했고요. 그럼 동성애규범성은? 전 이 부분에서 조금 고민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얘기해야 할 논의지만 자칫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트랜스젠더 운동에 참여하면서, LGB와 함께 운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성적소수자 혹은 퀴어가 동성애자로 대표되는 현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고민이었습니다. 어떤 모임에서, 트랜스젠더와 바이가 있는 자리인데도, “우리 동성애자들”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동성애자로 환원해버렸습니다. 그 환원은 트랜스젠더면서 레즈비언이거나 게이인 경우를 포함하는 뉘앙스는 아니었습니다. 동성애가 LGBT 혹은 퀴어의 대표 혹은 동의어로 쓰이면서 트랜스젠더와 바이가 누락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물론 당시 활동했던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에서 단체 차원으로 문제제기를 했고 조금 바뀌긴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우리 동성애자’란 언설은 여전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우리 트랜스젠더”라고 말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마 이렇게 발언했다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트랜스젠더만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동성애가 퀴어와 등치되고, 성적소수자와 동일시되거나 대표 형상으로 재현되는 이 상황에 어떤 식으로건 지속적 개입이 필요했습니다. 누구의 경험을, 어떤 범주를 전면에 내세우고 대표적 형상으로 말하고 있는지를 얘기할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동성애규범성을 말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규범적 이성애가 아닌 모든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 실천을 동성애로 환원하고, 특정 동성애 실천을 제외한 다양한 퀴어 실천을 배제하고 은폐하는 방식을 비판하는 동성애규범성 논의가 필요했습니다. 트랜스젠더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 역사가 제 연구 주제라서 소개하고 싶었다면, 동성애규범성은 운동 맥락에서 더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개인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활동가는 제 역할 모델이고, 어떤 활동가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고, 어떤 활동가는 트랜스젠더 및 젠더 이슈에 매우 민감하고… 하지만 집단적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죠. 그렇다면 이 지점을 말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글 한 편 출판한다고 관련 논의를 제기할 장이 마련되지는 않습니다. 글 출판은 그냥 글 출판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글 출판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업이니까요. 반드시 지금, 동성애규범성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기 전에 관련 논의가 본격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조심스러운 이슈에 목소리를 내 주시니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감사드리고 말고 할 건 아니지만요..;;;;;;
반가운 글이네요. 🙂
이렇게 적극 호응해주셔서 제가 고마운걸요. 누가 먼저 얘기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같이 논의를 엮어가느냐가 더 중요하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