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추 사흘 전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바꿀까란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기존 주제도 좋지만 새로 정리하고 싶은 주제가 생겼다. ‘생겼다’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박사학위논문이 아니라 개별 프로젝트로 하고 싶은 주제였는데 규모가 방대해서 학위논문 주제로 바꿀까 했다. 요즘 관련 주제의 논문과 단행본을 모으고 있기도 해서 바꿀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어제 한 선생님의 메일을 받고, 기존 주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바꿀 뻔한 주제도 기존 주제도 다 좋은 주제다. 더 정확하게는 둘 다 온 몸이 두근거리는 주제다. 본격적으로 뛰어들 고민만 하면 설렌다. 그러니 어떤 주제라도 상관없다.
몇 달 전, 아는 사람과 잠깐 얘기를 나누는데, 상대가 자신은 일 년 단위로만 살았는데 나이를 먹으니 미래가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하더란 얘기를 했다. 두 가지가 낯설었다. 난 아직도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다. 나이 들면 어떻게 살까를 걱정하지 않는다. 또한 내가 가장 멀리 고민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두 달이다. 두 달 정도 먹고 살 수만 있으면 생활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물론 내겐 10년 정도 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 지금까지 적어둔 것을 10년에 걸쳐 다 할 수 있을지가 오히려 걱정이다. 10년에 다 못 해도 상관없다. 그냥 계속하면 되니까. 이런 건 10년 넘게 전망하지만 일상 생활은 알바를 하건 뭘 하건 어떻게 되겠거니 한다. 정말 어떻게 되겠지?
내일 학과 콜로키움 발표가 있어서 글을 정리하고 있다. 기말 페이퍼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라 어렵진 않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글을 정리하면서, 그 동안 열심히 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놀기는 했다 싶어 다행이었다. 예전엔 개별 논문으로만 이해했던 논의가 지금은 내가 이해하는 지형 속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니 지난 시간 헛 논 것은 아니다 싶어 조금은 안도했다. 늘 불안한데, 내가 어제와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을까 늘 걱정하는데, 콜로키움 발표문을 정리하면서 조금, 아주 조금은 안심했다. 물론 여전히 많이 부끄럽고 많이 부족하다. 내가 부족하고 내가 쓴 글이 늘 부끄러운 건 나의 기본값이다.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조금 안도한 얘기를, 또 다시 부끄럽지만, 하고 싶었다.
아무려나, 좋다. 아직은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가늠할 수 있어서 좋다. 언젠가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무얼 더 해야 하는지 모르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난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이건 나중에 걱정하자. 지금 고민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니까. 지금은 지금 일만 고민하면 되니까(=콜로키움 발표문 정리 안 하고 뭐하는 짓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