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이 중산층 특권이라고?

01. “생물학이 운명이다”란 말을 접한 적이 있다. 페미니즘에선 조금 ‘유명’한 말인데, 이 말을 통해 젠더차별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원래 이렇고 여자는 원래 그래”라는 식의 언설들이 모두 “생물학은 운명이다”란 말과 닿아 있다. 그래서 이 말에 대항하며 나온 말이 “생물학은 운명이 아니다”이다. 어떻게 읽으면 유용할 것 같지만, 별로 재미없는 말이다.

루인이라면, “그래, 생물학은 운명이다. 그런데 네가 말하는 생물학과 운명은 어떤 의미냐?”고 묻겠다. 루인의 입장에서도 “생물학은 운명이다.” 루인에게, 운명이란 고정되고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성해가는 것이다. 생물학도 그렇다. 과학이라는 것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 시대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내용이 바뀐다. 머리의 크기가 지능을 결정한다, 뇌의 크기가 결정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 연금술로 황금을 만들 수 있다 등등 어떤 시절엔 모두 과학적 사실이었다.

“무엇은 무엇이다”, 란 식의 언설에 “무엇은 무엇이 아니다”란 식으로 대답하는 걸 들으면 참 재미없다. 어떤 식으로든 의미는 있지만, 상대방의 전제를 고스란히 인정하기는 마찬가지다. “생물학은 운명이다”란 말이나 “생물학은 운명이 아니다”란 말이나 둘 다, 생물학과 운명에 대한 내용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런 식의 논의는 재미가 없다. 에로틱한 자극이 없으니까.

[#M_ +.. | -.. | 문답이어받기를 하며 15번 대답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좀더 자극적이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좀더 에로틱하면 좋겠다, 였다. 힛._M#]

02. “채식주의자들은 중산층의 계급적인 특권 문제가 있다”는 말을 자주 접한다. 채식을 선택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오랫동안 이 말에 어쩌지 못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채식을 접하고 있으면 돈이 없으면 채식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이 문제였다. 루인이 범한 착각은, “채식주의자들은 계급적 특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바로 그 사람이나 정말 계급적 특권을 가져서 채식을 하는 사람들과 루인의 계급을 무심결에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채식에 모종의 반감을 드러내며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학교수 등의 중산층 계급이었다.) 쳇, 루인은 중산층이라서 옥탑방에서 생활하고 한 달 생활비를 50원 단위로 계산한단 말이냐.

채식을 중산층의 특권적인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자발이든 비자발이든) 지구 상 인구의 70%가 채식을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언설이다. 당연히 이런 통계자료는 채식 내부의 계급, 젠더 등의 다양한 차이를 비가시화한다는 문제를 가진다. 하고 싶은 말은, 소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웰빙 채식과 젠더차별로서의 채식, 관계를 고민하는 지점에서의 채식, 동물권을 말하는 이들의 채식 등 채식과 채식주의 내부의 다양한 차이를 지우고 화자의 편견으로 채식을 획일화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당신이 전제하고 있는 채식이 도대체 어떤 건데?”라고 되물었어야 했다. (아, 억울해. 으으으, 너무너무 화나!! 왜 이제야 깨달은 것이지, 바보바보바보.) 혹시 [슈퍼 사이즈 미]에서처럼, 젠더화된 채식과 이성애주의로 점철된 그런 채식을 상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 채식을 하는 ‘여자’친구가 주인공 ‘남자’를 챙겨주는 식으로 그리고 있다.)

4 thoughts on “채식이 중산층 특권이라고?

  1. 그런데 문제는 직접 키워 먹지 않으면
    채식을 하는덴 돈이 워낙 많이 든다는것인거 같아요
    채소값이 완죤 금값이자나요..
    그래서 돈이 없는 사람은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수 없이 육식을 할수 밖에없는듯
    같은 양의 배를 채우려다보면..
    그나마도 좋은 육식(?)도 아니고
    보통 햄, 소세지 처럼 비자연적으로 제작된(!)
    그런 육식을 할수 밖에 없지요..

    1.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무농약 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면 과일이나 채소 가격은 저렴하거든요.
      루인은 채식을 하며 오히려 돈이 훨씬 적게 들던데요.
      “돈이 없는 사람은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육식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루인에겐 상당히 문제적으로 다가와요.
      전형적인 육식이데올로기로 읽히거든요.
      오히려 더 계급적인 언설로 다가오고요.

  2. ;;;;;;;;;;;;;;;;;;;;;;;;;;;;;;;;;;;;;;;;;;;;;;;;;;;;;;;;;;;;;;;;;;;;;;;;;;;;;;;;;;; 중산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웃뷁에서 한끼 식사는 이만원대를 기냥 넘나들고 고기집에서 밥먹을 때 값을 생각하면…;;;;;;;;;;;;; 내가 자주 애용하는 3인분 짜리 칼국수 면발은 1400원이고 야식으로 주로 사랑해주는 송이버섯은 한다발에 1300원인데;;;;; 육식에 비해 채식이 돈이 적게 든다는 게 아니라 육식도 육식나름이고 채식도 채식나름인게 너무나 당연한건데 채식은 중산층? ;;;;;;;;;;;;;;;;;;;;;;;;;;;;;;;;;;;;;;;;;;;;;; 나와!

    1. 뭐, 페미니즘을 “배부른 중산층 “여성”들이 할 일 없어서 하는 일”로 여기는 언설과 마찬가지인 셈이죠. 한국에선 받아들이기 싫으면, 뭐든 수입품이고 중산층이잖아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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