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J.uz랑, 아슬과 채식관련 글을 함께 고민하면서 이 글을 살리기로 했어요. 그러니 이랑에도 나중에 올릴 예정. 푸훗.
첫 번째 글은 “채식주의 페미니즘, 모색하며 1/4“
―채식주의 페미니즘, 모색하며 2/4
-루인과 아슬
종종, 채식을 하면, 채식주의자로 살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이럴 때 마다 곤혹스러움을 느끼는데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아마, 정확하진 않아도 ‘간단’하게 답한다면, 별로 안 불편해요, 이다.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이 안 불편하단 건, 알고 지내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해서거나 페미니스트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이유로 상처 받은 적이 있으니까. 물론 채식주의자로 살면서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모임이 있은 후 음식점을 선택하는 문제 등에 있어선 “불편”하긴 하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루인이 채식주의자라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루인이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드러내는 다른 사람들의 (고민 없는) 반응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딜 가면 먹을 것이 있느냐, 치즈는 먹니, 고기도 안 먹고 어떻게 ‘사회’생활하겠냐, 그렇게 먹고 힘은 어떻게 힘을 쓰려고(공부 하려고), 등등의 반응들. 이렇기에 ‘정말’ 불편한 사람은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채식주의자 때문에 선택사항이 줄어들거나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야한다고 느끼는 사람들, 혹은 채식주의자란 이유만으로 거슬려하는 비채식주의자들이 아닐까. 채식주의자가 없다면 이런 불편을 느낄 이유가 없을 테니까. (물론, 정말로 육식중심주의를 감각하며 걱정하는 몸으로 묻는 경우도 있다. 드물긴 하지만.)
불편하지 않다는 건, 육류나 유제품 등의 다른 생명/존재들이 애시 당초 “음식으로서의” 선택사항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가 있어야만 잘 차린 상이라는 믿음들, 김치에도 “젖갈”이 들어가는 등 거의 모든 (판매하는) 음식에 “고기”가 들어가는 상황, 대부분의 음식점이 육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등으로 별 선택사항도 없고 불편하겠다고 느껴지겠지만, 전혀 아니다. “눈을 감아야 보인다”는 말처럼 육식을 이데올로기로 명명하고 다른 식으로 상상하는 순간,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채식주의자라는 걸 알고는 외국의 각종 사례를 들며 “인류학”적 지식을 자랑한 후 “그래도 나는 고기가 좋아”라고 말하며 채식을 정치학이 아닌 ‘단순한 취향’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불편하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어 반응하는 “쿨”하고 “관용”적인 (척 하는) 태도 역시 불편하다. 아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이런 경우들엔 거의 분노한다. (질문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것 같아 “관용”적인 척 침묵하고선 나중에 갖은 “실수”/폭력을 범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험들로 인해, 침묵이 더 불편하다.)
채식주의자로 살면 불편하지 않느냐는 얘기는 육식가들의 상상일 뿐,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경험이다. 그러니까 불편함이 있긴 한데, 그건 채식주의자들을 향한 육식가들의 온갖 고민 없는 반응들을 접할 때뿐이란 얘기다.
(“고민 없는 반응”으로 한정짓는 건, 같은 질문이라도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뭐, 덧붙이나 마나지만.)
3 thoughts on “채식주의자로 살면 불편하지 않느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