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프리실라를 다시 봤다. 또 보고 싶지만 다시 볼 기회가 있으려나.. 이번주 일요일에 끝나는데.. 뀨릉.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자면…
‘프리실라’라는 버스를 마련하기 위해 아담/펠리시아가 엄마에게 돈을 빌리는데, 그때 하는 말이 ‘엄마, 내가 사막을 여행하다보면 정신을 차리고 남자가 되어선 여자와 결혼할지도 모르잖아'(대충 이런 것이지 정확한 문장은 아니다)다. 이 발언에서 어쩐지 빵 터졌다. 깔깔깔. 이성애규범적 욕망을 적절히 자극해서 엄마의 돈을 뜯는 모습이라니 권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태어날 때 아들이라고 믿은 자식이 결국 아들이 되길 바라는 욕망/권력과 (호주와 한국은 다르겠지만) 엄마에게 계속 뭔가를 뜯어내는 자식이라는 권력이 동시에 표출된다. 깔깔깔.
역시나 가장 재밌는 장면은 버스가 고장난 직후다. 틱/미치가 아담/펠리시아에게 뒤에서 버스를 밀어보라고 하자, 아담/펠리시아가 뒤에서 하는 건 처음이라며 흥분된다고 말한다거나, 핑크색을 너무 남성적이라고 표현하는 장면 등에서 또 한 번 깔깔깔 웃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장면에서 드랙퀸과 트랜스여성의 음경을 농담거리로 입에 올리는 장면 역시 유쾌하다. 버나뎃의 잘라버린 6인치 음경을 버리지 말고 간직했다가 아담/펠리시아 입에 박아버려야 했다는 장면, 음경과 관련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바지의 앞섶을 계속해서 만지거나 스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장면 역시 재밌다. 드랙퀸과 트랜스여성의 음경이 갖는 의미를 복잡하게 만드는 이 장면은 깊게 분석하고 싶은 순간이기도 하다.
뮤지컬을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다면 정말이지 장면 장면을 분석하고 싶다. 그럴 수 없어서 아쉽고 그럴 수 없는 게 뮤지컬이나 연극의 매력이긴 하지만.
내가 본 배역은 다음과 같다.
-버나뎃=고영빈: 어쩐지 볼 때마다 고영빈의 연기였는데, 조성하의 연기를 보고 싶었다. 일단 고영빈의 연기 자체는 괜찮다.
-틱/미치=마이클 리 + 이주광: 마이클 리를 먼저 봤는데 그땐 그냥 무난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주광의 연기를 보면서 마이클 리가 얼마나 못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틱/미치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 역할인데도 마이클 리가 연기할 땐 뭔가 조연에 가까운 느낌이다. 이주광이 연기할 땐 버나뎃, 틱/미치, 아담/펠리시아 모두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주광이 틱/미치의 끼를 더 잘 살리기도 했다.
-아담/펠리시아=김호영 + 조권: 둘 다 연기를 잘 한다. 김호영은 김호영 대로 엄청난 끼를 발산하며 매력적이고 조권은 조권 대로 엄청난 깝을 발산하며 매력적이다(김호영은 끼를 떨고 조권은 깝을 떤다는 분석은 JH 선생님의 것!). 둘 다 만족스럽다.
그리고 미스테리. 이 퀴어한 뮤지컬이 어떻게 그렇게 감동적이고 휴머니즘 작품으로 유통될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