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강의 내용이 아니라 참석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몇 번의 당혹스러움 중, 첫 당혹스러움은 정체성의 다양성을 얘기하는 지점에서였다. 정체성과 관련해서 얘기를 하며 강사는 트랜스베스타잇, 트랜스젠더, 트랜스섹슈얼, 드랙퀸 등을 얘기했는데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하자 누군가 말했다. “다 말해놓고 또 있단 말예요?” 이 말을 듣고 많이 당황했다. 아니 그럼 섹슈얼리티 혹은 성정체성이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그리고 트랜스젠더 이렇게 넷 뿐 이라고 믿으신 건가요? S/M이나 메일 레즈비언(male lesbian), 피메일 게이(female gay) 등 말하지 않은 섹슈얼리티가 너무도 많았다. 대신 어떤 단체에선 80여 가지의 정체성 분류를 두고 있다는 얘기와 이에 대한 비판으로 넘어갔지만, 수강생의 ‘무심코’ 한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 말은 세상엔 ‘여성’과 ‘남성’ 둘이면 충분하며 그 이상은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필요 없거나 있어도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인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흰색처리;;)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지점들의 당혹스러움은 있었다. 하지만 이 당혹스러움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건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리티의 가장 기본적인 논쟁점인 젠더에 관한 논의 없이 강의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사는 젠더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젠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따라 강의 내용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강사의 해석과 루인의 해석이 달라 헷갈리기도 했다.
강의가 끝나고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페미니스트가 트랜스혐오 발언을 했다는 점과 트랜스의 다양한 정체성들이 주는 ‘놀라움’이었다. 전자는 사람들이 놀랐다는 사실에 더 놀랐고 후자는 좀 다르게 다가왔다. 한 번도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해가면서도 낯설었다. 정말 자신이 ‘여성’인지 혹은 ‘남성’인지 확신한다는 의미인거야? 툭 터놓고 말해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자신이, 지금의 젠더구조가 부여하는(주민등록증으로 강제하는) ‘여성’ 혹은 ‘남성’인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있음과 젠더가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해 묻지 않고서 젠더를 얘기하고 있음을 궁금한 것이다. 젠더는 단순히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으로서 여성다움, 남성다움”이 아니라 혹자의 표현을 빌면 컬트고 루인의 표현으론 집단광기이기 때문이다.
강의 내용을 젠더에 대한 질문으로 하지 않고 “분쟁”을 중심으로 이끌어간 건, 그래서 많은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강의를 통해 레즈비언 페미니즘과 트랜스 간에 있었던 논쟁뿐 아니라 둘 사이의 논쟁을 통해 발생하는 “젠더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까지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당시 어떤 분위기였기에 페미니스트가 트랜스 혐오 발언을 했는지, 도대체 왜 그런 발언을 했는가 하는 질문은 안 나오지 않았을까.
[#M_ +.. | -.. | 강의 중인지 질의응답시간이었는지 정확하겐 기억나지 않지만 얼마간의 ‘논쟁’이 있었던 내용.
만약 당신이 트랜스‘여성’(mtf, 즉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트랜스)일 경우, ‘여성’에게 당신이 ‘여성’임을 인정받는 것이 좋을까요, ‘남성’에게 ‘여성’임을 인정받는 것이 좋을까요. (여기서 ‘인정받음’은 그저 별다른 의심 없이 ‘여성’으로 여겨진다는 의미예요.) 강의에 있었던 사람들과 이곳에 오거나 루인이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게 다를까. 리플은 기대도 안 하니 물어보고 다녀야겠다.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