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뇌아Anencephaly라는 용어 자체는 그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몸의 형태를 지칭하는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용어가 사용되는 방식은 명백하게 장애 혐오 발화다. 이 용어를 사용할 때 그 의도는 ‘생각 없음’, ‘머리에 든 게 없음’ 등이겠지만, 정작 ‘무뇌아’ 증상으로 태어난 인간은 전혀 사유하지 않는다. 아니 이 증상으로 태어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망각한 상태에서 그저 하나의 수식, 수사로만 사용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에이즈가 쓰이는 용법처럼, 암이 쓰이는 용법처럼. 그런데 이 용어가 페미니즘과 결합할 때, 장애 이슈와 페미니즘 이슈를 동시에 고민하는 사람, 장애인이면서 페미니스트인 사람 등은 순간 당황하거나 갈등하고 더 많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선생님은 은유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하셨다. 은유는 소통을 원활하게 하거나 의미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다. 뭔가 머리 속에서 형광등이 켜지는 듯 깨닫는 그런 순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은유는 언제나 은유로 쓰이는 그 존재에게, 혹은 은유로 쓰이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심각한 폭력이다. 은유는 그저 관습적 용법이 아니라 존재나 대상을 이해하는 사회적(혹은 그 은유를 사용하는 개인의) 관념, 인식론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많은 사람, 특히 많은 페미니스트와 퀴어연구자가 은유의 위험을 지적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런 은유를 피하며, 비판하며 글을 쓰다보니 글을 쓰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럼에도 더 좋은 글을 쓴다.
인상적이네요. 은유를 사용하지 않으려한다는 그 말이요. 학자들은 그럴 수 있겠어요.
한편으로는 학자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학자면서 자신의 문체를 갖고 있는 작가가 은유를 사용하지 않고 글을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문체를 고민하지 않는 학자가 너무 많아서 많은 논문이 찍어낸 느낌이긴 하지만 문체를 고민하고 있으면 은유를 비켜가기가 어려울 때가 많더라고요.
물론 문학이나 예술에 비할바는 아니지만요…;;;;;;;;;
네, 그래서 뭔가 그 불가능을 향한 자세에 감탄하고 있어요.
은유없이 쓰는건 사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아닐까요.
근데 그것을 향해간다는 태도랄까, 자세라는 것에 뭔가 프로페셔널적인 아름다움이 있네요.
응, 맞아요. 거의 불가능한 작업 같아요. 은유나 그런 것 없이, 하지만 또한 자신만의 문체로 글을 쓰는 작업을 보면 정말 멋지고 존경이 절로 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