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체계, 법의 한계에 갇히지만 않는다면 판결문은 정말 흥미로운 텍스트다. 어떤 사건의 ‘실체’라고 가정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려주는 몇 안 되는 문서며, 특정 사건을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을 그럭저럭 구체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법의 한계에서 해석한다면 판결문은 그저 헌법 혹은 특정 법의 법적 논리를 어떻게 해석했느냐, 혹은 어떻게 적용했느냐의 이슈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분석은 끊임없이 기존 법의 논리를 반복하고 기존 법의 한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법을 문화 텍스트로 접근한다면 이것은 어떤 사건을 인식하는 법적 인식론의 한 단면을 알려주는 매우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 된다. 그리고 판결문을 신문 기사, 현재의 문화적 인식과 연결해서 분석한다면 이것은 풍성한 문화 텍스트가 된다. 어떤 사건을 분석할 때 판결문보다 흥미로운 텍스트도 없다 싶을 정도다.
현재 대충 찾아보면 판결문을 분석하는 많은 작업이 법학 논문에 치중해 있다. 여성학이나 문화학에서 관련 작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판결문을 분석하는 작업의 대부분이 법학 전공자가 하고 있다. 하지만 법학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이 젠더연구나 문화연구 맥락에서 판결문을 분석하는 작업을 많이 하면 좋겠다. 나 역시 이 작업을 하고 싶어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판결문을 법의 한계를 무시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정말 흥미로운 분석이 잔뜩 나올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