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고났다”는 언설, 즉 LGBT/퀴어는 선천적으로 타고났다는 언설은 정말 많은 LGBT/퀴어가 사용하는 수사다. 그리고 이를 통해 존재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ㄱㅇㅍ(ㄱㅇㅍ이 혹시나 자기 이름으로 웹검색을 할까봐…)은 “동성애가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면, 동성애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 동성애가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면 동성애를 도덕적인 문제가 없는 정상으로 인정해야 한다.”(11)로 쓰면서 동성애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선택임을 입증하려 한다. 그런데 이른바 성적지향, 젠더정체성은 타고난다는 생득설이 LGBT/퀴어를 혐오하고 때때로 살해하는 근거로 쓰인다면 어떡할 것인가? LGBT/퀴어를 정당화하고, 사회적 차별을 문제삼으려고 사용하려는 언설, 수사, ‘논리’가 혐오와 때때로 살해의 근거로 쓰인다면? 그런데 이것은 정확하게 현실이다. 생득설은 혐오의 근거로 쓰이곤 한다. 그럼 선택을 주장할 것인가? 아니, 이런 식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논의가 필요하다. ‘생득 vs 선택’은 LGBT/퀴어의 삶을 설명하는 언설이라기보다는 이성애규범, 이성애제도를 안정화시키는 논리기 때문이다.
오늘 어느 글을 읽다가 생득설이 혐오의 근거로 쓰이는 구절을 읽고 든 진부한 단상, 그리고 메모.
인용은 길원평.
읽은 글은 Talia Mae Bettcher. “Evil Deceivers and Make-Believers”
그웬 아라우조를 살해한 이들이, 자신들은 속았고, “섹슈얼리티, 성적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아라우조가 자신들을 유혹하고 기만했다고 항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