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방법

애도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그 방법 중 하나로 제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음식 준비를 누가 하고 제사 의례에서 권력을 누가 행사하느냐에 있지 제사라는 방식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나는 기생충). 음식 좀 간소하게 하면서(떡 대신 피자를 올린다거나) 동시에 음식을 주변 친구와 함께 나눠먹을 수 있다면 이것도 애도하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일년에 몇 번 명절 차례나 제사에 참가해야 하는 나는, 한때 이것이 무조건 폭력적이라 폐지해야 하는 악습이라고 믿었다. 기본적으로 여성에게, 그리고 비규범적 삶을 사는 이들에게 명절 차례와 제사는 폭력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민이 조금 바뀐 것은 ‘이 시기가 아니면 언제 모이겠느냐’고 ‘어른’들이 자주 말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라 ‘이 형식이 아니면 언제 애도하고 기억하겠느냐’에 있다. 그러니까 어떤 하루를 기념일로 혹은 애도할 날로 약속하지 않는다면 애도의 대상은 그냥 스쳐지나가기 쉽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으며 오래오래 기억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생각보다는 금방 잊힌다. 평생 기억할 것 같은 일도 몇 년, 십년 정도 흐르면 조금씩 그리고 계속 희미해진다. 물론 잊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년에 하루 정도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서 애도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살아 있는 삶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리고 애도하기 위해서, 정치적 삶/죽음을 마냥 정치적 의제로만 가져가지 않기 위해서 제사라는 형식도 나쁘지 않다. 애도의 형식을 제사로만, 차례로만 규정한다면 이때부턴 심각한 문제지만. 애도 형식의 독점권을 갖지 않는다면, 애도의 내용을 규정할 독점권을 갖지 않는다면 제사도 나쁘지 않지.

그러니까 슬퍼할 시간, 애도의 형식, 애도의 내용을 타인이 규정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말은 윤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