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란 구절이 나는 정말로 당혹스럽다.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과 당혹감이 나를 흔들 뿐이었다.
그리고 문득 깨닫기를…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는 언설은 인권을 절대 가치로 상정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절대적으로 고수해야 할 것으로 가정한다. 그런데 커다란 질문이 남는다. 여기서 말하는 인권은 뭐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지? 인권을 목숨으로 등치하는 순간, 인권이 경합하는 개념이며 언제나 투쟁의 대상이란 점을 삭제한다. 질문할 수 없는 무언가로 존재할 뿐이다.
목숨과도 같은 인권에 어떤 내용이 포함될까? 예를 들어 동성결혼 혹은 동성애자의 결혼은 목숨과도 같은 인권에 포함될까? 그런데 동성 파트너의 결혼 관계를 보장하는 법은 바이섹슈얼을 추방에 준하는 상태로 만들었다. 실제 추방한 사건도 있다. 동성결혼 혹은 동성애자의 결혼은 정말로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고 말할 정도의 가치를 담은 것인가? 오히려 이런 태도는 동성애자가 아닌 존재를 추방하고 삭제하는 행위는 아닌가? 강하게 의심할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에게 인권이 목숨이다’란 말은 이른바 성소수자로 불릴 법한 존재를 동일하고 동질한 범주로 엮는다. 그리하여 성소수자의 이해관계를 균질한 것으로 만든다. 어떤 하나의 주요 의제가 정해졌다면 최소한 성소수자에게 그 의제는 동일한 가치를 지닐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럴 수가 없다. 강력하게 반박할 내용이라고 해도 이것을 ‘목숨’이란 장엄한 표현을 동원함으로써 반박할 수 없도록 한다. 침묵을 유도한다.
그리고 또… 아마도 나중에 더 많은 이유가 떠오르겠지.
성소수자에게 혹은 LGBT/퀴어에게 인권은 목숨이 아니라 치열하게 경합하고 갈등하고 논쟁 중에 있는 개념일 뿐이다. 나는 진실로 이 논쟁이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믿는다.
‘생명’과는 사뭇 다른 ‘목숨’
그 ‘목숨’이 단두대 위에서 어떻게 내동댕이 쳐지는지,
어떤 ‘목숨’은 단두대에 가는 길에 구출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목숨’은 막 구출되었던 그 ‘목숨’ 대신에 단두대 위에 오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