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 중 하나는, 성별 이슈에는 ‘과거가 없다’는 인식이다. 누군가 성별 이슈를 꺼낸다면 페미니즘과 관련한 책도 충분히 보지 않고 여성의 역사도 모른 채 자신이 처음 제기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페미니스트’든 모두, 자기 혼자 ‘이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선구자 의식과 동시에 피해 의식과 울분을 갖기 쉽다. 여성의 경험은 공유되지 않고 여성의 역사는 전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가 젠더 체제의 가장 ‘비참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정희진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 97~98.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신간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를 읽다가 이 구절에서 무릎을 딱 쳤다. 마치 내가 처음 깨달은 것처럼 분연히 일어나 말하는 태도는 페미니즘만이 아니라 퀴어 이슈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몇 년 전엔 몇몇 트랜스젠더퀴어가 그동안 트랜스젠더퀴어 관련 모임이 전혀 없었다는 듯 성토하고 모임의 필요성을 피력하는 글을 써서 약간의 화재였다. 마치 나 이전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마치 내가 처음 시작한다는 듯.
나라고 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느냐면 그럴리가. 나 역시 이런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더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를 탐문하려고 애쓰고 있다. 헛소리를 안 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또한 예상하고 있다. 아마도 한국 지역을 중심으로 한 트랜스젠더퀴어 역사서가 출판된다고 해도 여전히 트랜스젠더퀴어와 관련한 모든 깨달음은 마치 지금 처음 내가 깨달았다는 듯 분연히 떨쳐 일어나는 사람이 있겠지. 그것이 비규범적 존재, 혹은 권력 위계에서 약자에 속한다고 가정하는 이들의 삶이니까. 스스로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자신의 역사를 알려주지 않으니까. 정말로 ‘비참’하고 속상한 일이다.
정희진 님 쓰신 구절에 공감합니다… 하…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에 실린 정희진 선생님 글은 정말 명문입니다. 못 읽으신다면 두고두고 아쉬우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