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때 중국 내 전쟁의 하나로 마을에서도 전쟁이 났고 불사라고 믿었던 아버지가 이웃집 사람에 의해 참수당한 모습을 봤다.
간신히 야반도주하여 어머니, 형과 어느 마을에서 살아 남았다.
겨우 자리를 잡은 마을에 역대 전례 없는 대홍수(2.1미터 높이 정도의 홍수)가 발생하였다. 홍수가 두 달여 가까이 지속되었고 이후론 가뭄이었다.
어떻게 살아 남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형과 헤어져 근처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공부를 하던 중 군인을 봤고 그 길로 군에 입대했다.
속한 군은 국민당이었고 국공내전에 참가했다. 6.25 전쟁은 가볍다 여길 정도의 전쟁에서 간신히 살아 남았지만 국민당이 패했고 그는 돌아갈 곳 없어 헤맸다.
밥을 준다는 말을 듣고 공산당 군대에 입대했다.
거기서 다시 전쟁을 치르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후 6.25 전쟁에 파병되어 참전했다.
동료가 다 죽었지만 혼자 살아 남아 미군 포로가 되었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3년을 지냈다.
살아남기 위해 몸에 공산당을 격파하겠다는 문신을 새겼고 중국과 대만 중에서 대만을 선택했다.
대만에서 버스 운전기사로 21년을 일하며 결혼을 했고 이혼도 했다.
이혼 후 집 곳곳에 누드사진을 붙여두고 야동도 보면서 여장을 하곤 했다.
여장, 그게 무슨 그리 큰 일이라고. 집에서 하는 여장은 정체성도, 프라이드도, 다른 무엇도 아니었다. 그냥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전쟁터에서 소똥 터지듯 동료가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개미떼가 쌓여 있듯 사람 시체가 쌓여있는 곳에서 시체를 치웠고, 앞서 가던 전우가 총에 맞아 죽어나가고 뒤따르던 전우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봤다. 집에서 여장하는 걸 딸에게 자랑하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중국 근현대사를 살아온 사람에게 여장은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른 말로 삶의 경험 맥락에 따라선, 지금 내가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일이 무심한 일이다. 6.25 전쟁도 겪은 한국인데 성전환하고, 젠더를 다르게 설명하고, 비이성애자로 살고, 페미니스트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 정도 뭐 그리 큰일이라고 그리 난리신가.
*이 글의 내용 중 일부엔 E님의 의견이 섞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