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규정하는 규범성

폭력은 무엇인가에서 폭력은 무엇을 하는가로 질문을 바꾸는 것은 익숙한 방식이다. 감정은 무엇을 하는가처럼 정의를 모색하기보다 그것의 효과를 탐색하는 작업은 사유의 방향을 새롭게 하기 때문이다.

폭력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때, 폭력은 지배 규범을 재생산하고 안정성을 재강화한다는 답은 어렵지 않다. 폭력의 행사는 지배 규범적 권력을 실천하는 행위일 때가 많고, 그리하여 폭력 가해자가 상정하는 규범성에 피해자를 복속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면, 특정 행위를 폭력으로 규정하는 일은 또한 무엇을 생산하는가로 다시 질문할 수 있다. 어떤 행위를 두고 폭력적이라고 규정하는 행위 자체가 규범을 재생산하는 작업이라는 의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BDSM은 폭력인가? 드랙퀸 실천은 여성 혐오인가? 성전환 수술은 신체 훼손이자 여성성을 혐오하는 것인가? 퀴어-페미니즘 운동사/이론사에서 이런 질문은 종종 급진적 저항 정치와 비판 이론을 구축하는 중요한 내용이었다. 지금도 드랙은 여성 혐오라는 비판이 상당하고, 트랜스젠더퀴어를 향한 혐오가 페미니즘의 의제로 채택된다. 그렇다면 특정 행위를 폭력으로 규정하는 행위가 폭력적 규범성을 파훼하는 행동이 아니라 폭력적 규범성을 재생산하는 실천으로 다시 독해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럴 때 폭력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완전히 다른 상황을 동시에 포착한다. 특정 행위를 폭력으로 규정하고 그 폭력 행위가 생산하는 규범성을 문제삼는 것. 특정 행위를 폭력으로 규정하는 인식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비트랜스)여성성 같은 특정 규범을 본질화하는 것. 물론 전자와 후자는 다른 논의의 맥락에 위치하고 다른 질문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중첩성을 다시 탐색할 수는 있다.

물론 이것은 아직은 아이디어 메모 수준이지만 올해 중으로 글 한 편을 쓰고 싶은 주제이기는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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