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난 날 공유한 이야기인데 여기도 메모.
수업을 준비하고 이런 저런 글을 읽고 하다가 문득 그런 고민이 떠올랐다. 규범을 말하는 것은 구조를 말하는 것일까? 규범, 그러니까 퀴어에 대한 구조적 차별의 작동 양상을 이성애규범성이라고 명명한다. 그리하여 이성애규범성을 말한다면 이는 이성애를 사회의 자연 질서로 삼고 있는 구조적 문제, 정치적 문제 그리고 이 구조가 조장하는 폭력과 차별에 문제 제기하는 의도를 내재한다. 이원 젠더 체제, 강제적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명명은 모두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등장했고 그것이 설득력을 획득하고 설명력을 갖추면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럼 이제 규범성을 말하는 것은 곧바로 구조를 말하는 것일까? 개인의 경험이나 개별적 피해 경험이나 불편함을 논하며 여기에 이성애규범성과 같은 언급을 한다면 이는 곧 구조적 문제를 말한 것일까? 아님 구조적 문제를 말했다는 간편한 면피를 획득한 것일까? 규범성을 논하는 과정은 구조적 논의를 반드시 필요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규범을 언급하는 것으로 구조를 분석하지 않기 시작할 때, 규범성을 언급하는 것은 구조를 논하기보다 개인적 사건으로 치환하는 것이지 않을까? 개인적 사건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논의에서 개인의 고통과 어려움, 곤란함을 말하면서 동시에 개인이 위치하고 있는 다양한 배경이 같이 논의되어야 하는데 규범성 언급이 그 모든 필요와 노력을 간단하게 면피시키는 것은 아닐까?
뭐, 이런 고민을 했다. 이런 고민은 내가 지금까지 쓴 글 모두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못한 것이거나 내가 쉽게 면피하려고 언급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욱 구조를 말하는 것의 의미, 규범성을 명명하는 것의 위미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오늘 인미공에서 진행한, “스퀴시! 숲 속에서” 전시와 조윤희 선생의 무성애 강의를 듣고 왔다. 전시도 좋았지만 무성애 논의를 전시와 강연으로 엮어서 들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더 많은 논의가 나오며, 규범성과 규범성을 충돌시켜 발생한 균열에서 더 많은 논쟁이 나오기를!
… 그러고보면 규범성 언급이 곧 구조를 언급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규범성은 빈번하게 충돌하고 갈등을 일으키는데 이에 대한 질문과 논의가 누락된 상태에서 규범성을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와 연결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