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평론] 급진적 예술 실천을 위한 기억의 훈련들“
위 링크의 글에서, “검열, 수탈, 무례”의 하단에 있는 ‘더보기’를 열어주세요.
조그마한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는 노동자로서, 아카이브는 언제나 정치적 가치를 지향하는 작업이라고 말해왔다. 정치적 가치를 지향하는 작업은 필연적으로 편향적이며, 그 편향성이 만드는 긴장, 불안, 위험성, 그리고 가치를 계속해서 질문하면서 또다른 아카이브적 가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특정한 종류의 편향성이 내가 참여하고 있는 조그마한 아카이브의 설립 취지이자 운영 취지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나 내가 이것을 충분히 제대로 못 하고 있어서, 아카이브에서 일을 한 햇수만큼의 업[黑黑業]보를 쌓고 있기도 하다.) 또한 문제가 된 전시에 얼마간이라도 기여했는데, 그 전시에 참가한 모든 아카이브는 특정한 방식의 편향성과 정치성을 기관의 가치로 삼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남웅님의 글에 적혀 있는 문제제기에 동의한다. 다른 납득할 이유라면 모르겠는데, 중립이 이유라면 아카이브 전시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장애인인권영화제 문구가 딱 적당할 거 같다. “기록으로 저항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