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아니라 기사가 더 화난다

문제의 기사는 “보호기관까지 찾아가서 추행… 인면수심에 망가진 ‘가출 소녀’

우연히 거슬리는 제목이 들어왔다. “망가진”? 무엇이 “망가”졌다는 의미일까?

이 기사를 읽으며 화가 나기 시작한 건, 그 L의 폭력보다도 기사를 쓰는 기자의 언어와 해석 때문이었다.

* 그러나 K양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출을 했으며 지난 수개월간 서울과 인천, 부천 등 경기지역 PC방과 여관을 전전하며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진 것은 물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만 것으로 드러났다.

“씻을 수 없는 상처”에서 기자가 말하는 “씻을 수 없는 상처”는 무엇일까? “망가진” 것과 “씻을 수 없는 상처”란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너무도 자명하다. 성. “여성”의 “정조”? “순결”? 결국 기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성폭력이 발생한 성별/젠더, 계급, 나이주의 등의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모두 지우고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가정하는 동시에 그것은 “순결” 혹은 “정조”가 “망가”졌기에 생긴 “씻을 수 없는 상처”란 의미다.

하지만 “순결”이나 “정조”의 의미는 누가 요구하는 것일까. 그것을 그렇게까지 중요시 하고 강박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성애’-젠더구조에서 모든 사람은 ‘이성애’자야 한다는, “여성”은 “남성”을 “거치지 않은 순결한 존재”야 한다는 강박이 만든 의미들 아냐? (그렇기에 아래 인용한 내용에서처럼 “죄의식”을 요구한다. 도대체 K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그리하여 “씻을 수 없는”이란 말은 마치 성폭력 사건은 (피)해경험자에게 영원한 낙인을 찍는 그래서 다른 어떤 정체성보다도, 그 어떤 행동보다도 가출과 성폭력(피)해경험이 우선함을 의미한다. 그 어떤 순간에도 웃어선 안 되고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평생을 고통 속에서 지내야 하는 “투명한 피해자”로 본다는 의미다. K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든 상관없이 이미 K의 일생은 결정되어 있는 셈이다.

* 특히 더 큰 문제는 K양이 아무런 능력이 없고 판단력도 미흡한 상태에서 아무런 죄의식이나 거부감 없이 험난한 세파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내용은 더 짜증나는데, 초등학교 6학년이면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는 나이야? 사실 이런 인식이 아동성폭력을 더욱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게 하는데, 그건 아동을 순진하고 순수한 존재로, 무기력한 피해자로만 그리기 때문이다. 아동성폭력 사건마다 차이는 있지만, 상당수가 아동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존재”라는 이유로 발생한다. (세대 간의 사랑과는 구분할 것.)

아동을 이렇게 그리고 싶은 기자의 환상은 알겠지만 7살의 어린이도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한다. 어린이는 “잘 모르고 판단력이 없다”는 말은 아동기의 발명했기에 성립 가능한 언어들이다. 나이주의가 강력한 통제수단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일테면 20대 후반엔 결혼을 해서 30대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40대엔 안정적인 생활과 … 등등의 환상들로 인해 받는 각종 스트레스와 강박들) 10대들 역시 자신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 말은 25살의 성인 “남성”과 동일한 권력과 위치를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협상하고 그런 협상을 통해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어린 조카나 동생 혹은 과외 하는 학생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모르는 것 아니다. 누구와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설마 이 말을 “그러니 K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겠지?).

또한, 이런 인식은 “순진무구한” 어린이가 아닌 성인 성폭력(피)해경험자에겐 손쉽게 그 책임을 돌릴 수 있게 한다.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 “너도 즐긴 것 아니냐”란 말이 쉽게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성인은 더 이상 “순수”하지 않기에, 성폭력(피)해경험자일 수 없다는 인식,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경험자가 사건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몬다.

*이혼한 아빠와 병든 할머니, 언니와 함께 생활해 온 K양이 밝힌 가출 배경은 단지 ‘집이 싫어서’다.

하지만 한창 사랑받고 행복해야 할 나이에 불안정한 가정환경과 궁핍한 생활이 소녀를 밖으로 내몰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더 많은 부아가 치밀었는데, 철저하게 ‘이성애'”정상”가족의 강박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 결국 “정상”가족이 아니었기에 문제라는 인식, 문제의 책임을 사회적 맥락이 아닌 한 가족에게만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상”가족이 아니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정상”가족이 아니면 문제가 있을 거라는 주변의 인식, 의심, 혐의들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엄마” 혹은 “아빠”가 없어서, 이혼가정이라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은 문제가 있을 거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그렇게 대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따지고 보면 “정상”가족이라고 문제가 없느냐고. 아동폭력, 아내폭력, 가정폭력 등등 상당수가 “정상”가족에서 일어나는 일 아냐? 이런 말을 통해 “정상”가족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환상과 허구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런 인식은 더 위험하다. 그래서 이런 리플
을 가능하게 하고 폭력피해 속에 있는 사람들이 그 가정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아빠”가 아무리 폭력을 휘둘러도 ‘이성애'”정상”가족은 화목하고 단란하다는 환상이 가장 빠를 수 있는 해결방법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미 심신이 쇠약해진 그의 망가진 삶을 되살리는 것은 결국 이 사회의 몫으로 남게 됐다.

가장 무책임하게 내뱉는 마무리인 이 구절은 앞서 한 비판을 종합하고 있는데, 사회엔 아무런 책임이 없어? 가출했다고 하면 무조건 나쁘게만 바라보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들-루인을 비롯해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이 기사를 읽은 사람, 이 소식을 들은 사람 혹은 접하지 못한 사람들까지)의 태도, 이혼가정은 “문제”(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는 태도들이 뒤섞여 있고, 성별, 나이주의, 계급 등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데, 마치 이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의 태도는 사건이 발생하고 지속하고 방치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핵심이다. 루인에게 이 기사는 가해자 L 만큼이나 폭력적이고 “인면수심”이다.

“인면수심”이란 말도 문제가 많은데 “인면수심”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인면수심”이란 표현은 L에게만 문제가 있다는 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가해자의 폭력동기를 권력관계가 아닌 알코올중독이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정신에 이상이 있어서 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L의 폭력은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가능한, 인간이라서 가능한 폭력이지 “인면수심”이라서가 아니다. (“인면수심”이라니. 이건 순전히 인간이기주의, 인간우월주의의 표현일 뿐이다. 사실 그래서 더 화나는 표현이다.)

6 thoughts on “사건이 아니라 기사가 더 화난다

  1. 성폭행이나, 성추행 등의 기사를 다룰 때는 특히 더 언어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흔히 저 위의 기사와 같은 표현들을 많이 하잖아요? *망가졌다/버린 몸/ 짓밟힌 몸* 등등 이런 단어들이 너무 당연시하게 사용되니까, 피해 여성들 조차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뒤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 “나는 이미 버린 몸”이라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자포자기 하고 절망으로 더 빠지는 경우가 많은게 아닌가 싶어요. *버렸다.* *망가졌다*는 어떤 재생이나 치유의 희망이 전혀 안보이는 단어잖아요. 특히 꼬마들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경우엔 저런 단어를 쓰면 더더욱 안될 거 같아요. 그냥 네 몸에 작은 상처가 낫는데, 그 상처는 새살이 돋아서 다 없어질거야. 이런 식으로 말해주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고. -_-;; (상투적인 표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일반화 된 단어들이 때로는 여러 사람을 절망으로 넣기도 하죠.)

    1. 정말 그래요. 어떤 언어를 쓰느냐가 중요한데 무심코 쓴 말이 상대를 더 절망에 빠지게도 하잖아요. 무력하다, 무력하다 하면 정말 무력해지고 더욱더 무력해지듯, 말 하나 언어 하나가 방향을 전환하고 치유하는 힘이 될 수도 있는데 저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적으면 정말 속상하고 화가 나요.

  2. 공감합니다. 특히 ‘정상’ 가정이 아니면 문제가 있을 거라는 인식에 대한 지적이요. 전 ‘결손 가정’이라는 말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어요. 그런 가정에서 자란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결손 가정’이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인 함의를 인식하는 순간 그것이 상처가 되는 것 같습니다.

    1. 아, 정말이지 “결손 가정”이란 말은 끔찍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몸에 팍팍 와 닿아요. 부정적인 함의를 인식하는 순간, 상처가 된다는 말이요.

  3. 전 k양의 단짝 친구 입니다 이런글을 써 주시니 더욱 슬퍼지는군요… 정말 착하고 이쁜친구였는데 정말 슬픔니다 병원에는 다니고 있다하니 걱정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제 친구 기사가 또 나오면 말씀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1. 사실 이런 글을 쓸때면 언제나 어려워요. 한 편으론 죄송하고 한 편으론 무겁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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