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회의나 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사무실이면서 연구실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루인에게, 세상은 사무실 공간이 전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글을 쓰고 글을 읽고 [Run To 루인]과 놀기도 한다.
한때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근사한 서재가 있고 그곳에서 폼 나게 글을 쓰는 줄 알았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곳도 이곳 사무실이다. 어릴 때 책들을 읽고 놀며 정말이지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들은 모두 폼 나는 서재가 있는 줄 알았고, 약간 어슴푸레한 곳에서 만년필로 글을 쓰는 줄 알았다. 그래서 [파인딩 포레스트]란 영화는 너무도 즐거웠다. 하지만 연구실에 상주하고 이곳에서 모든 글을 쓰면서, 그런 기대들이 계급에 기반을 둔 환상이었음을 깨닫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모나미153 볼펜으로 이면지에 글을 쓰고 있는 루인. 루인도 어쨌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멋진 서재와 값비싼 만년필은 계급의 상징이기도 하다. 물론 여전히 모나미153 볼펜이 좋고 이면지에 쓰는 글이 편하다.
가장 친한 친구와도 한두 달에 한 번 연락을 할까 말까인 루인은, 어지간해선 약속이란 게 없다. 만남을 전제하는 약속이라니. 올 6월 3일을 기준으로 인생이 좀 바뀌어서, 한 개의 단체에서 활동하고 한 개의 기획단에 참여하고 있고 한 개의 세미나 팀에 속해있기에 종종 생기는 회의가 아니라면 약속 자체가 없는 편이다. 다이어리엔 회의 일정이나 조교업무 관련 일정, 수업 관련 일정을 제외하면 공백이다.
아침, 사무실에 도착하면 화장실에 가는 것, 점심 겸 저녁을 사러 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사무실 밖으로 안 나가고 그래서 누구도 만나지 않는 날도 있다. 종종 누군가를 만나고 있으면 불편하고 쉽게 지치기도 한다. 물론 이건 익숙함의 문제이기도 하다. 익숙해 가는 과정은 언제나 피곤하고 지치기 쉽다.
이런 생활의 유일한 그래서 취약한 근거는 조한혜정선생님의 [글 읽기와 삶 읽기]란 책이다. 그 책은 일종의 충격이었고 무엇을 어떻게 읽고 몸앓을 것인가를 다시 고민하게끔 했다. 우연인지 그 책을 읽던 시기에 정희진선생님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조한혜정선생님의 책에서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구절의 하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자기 성장을 위해선 관습적인 인간관계의 일부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어지간한 결혼식은 안 가고 등등.
그 책이 루인에게 위로일 수 있었던 이유는, 루인이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식과 같은 어떤 관례적인 행사들에 참여하는 것만큼 시간낭비도 없다고 느낀다. 마치 그것이 친분이나 우정의 징표처럼 여겨지고 그리하여 참여하지 않으면 엄청난 잘못이라도 한 것 마냥 여기는 건 정말 웃기다고 느낀다.
하지만 혹은 그리하여 루인의 세상은 사무실이 전부이다. 인터넷이 유일한 출구처럼 여겨지지만 인터넷은 출구라기보다는 고립이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 인간관계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며 선택한 이곳은, 루인에게 고립된 공간이라기보다는 출구이고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폐쇄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도피의 공간이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기도 하다.
학부가 방학했나보다. 3월이 올 때까지 일주일 내내 누구도 만나지 않으며 지내는 날도 있겠다 싶다. 조금은 복잡한 몸으로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누구도 안 그러는데, 2학기 때부터 석사논문을 준비 중에 있고 그래서 이번 방학 때 참고문헌으로 들어갈 책과 논문들을 읽겠다고 계획하고 있고 그러며 마치 혼자서 세상의 논문은 다 쓰는 것 마냥 호들갑이기도 하다. 그렇게 방학 없는 방학을 계획하면서도 좋아하고 있고 끝없이 이 공간으로 파고들고 있다. 히키코모리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다고 느끼지 않고, 그것이 나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고 포기하는 것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뿐이다. 그 뿐이다.
주말이 유난히 기네요.
영화보기 좋은 날들이 될것같아요.
추천해 주실 영화 있으시면 부탁해도 될까요 🙂
어떤 취향인지를 잘 몰라서 슬쩍 걱정이긴 하지만, 그저 이 시기에 볼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로 루인이 얘기하는 걸 선택한다는 의미로 여기고 말할게요. ^^;;(이미 보신 영화라면 슬쩍 무시해주세요;;;)
문득 떠오른 영화는 엄정화가 주연한 [오로라 공주]에요. 우울증과 관련해서 참 재밌게 봤더래요. 사무실에 있는 작은 모니터로 보다가 엉엉 울어서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혼자 있었더래요. 흐흐흐.
[녹차의 맛]은 이미 보셨을까요? 특별한 갈등은 없지만 은근히 재밌더라고요.
(쓰다가 깨달은 사실… 영화관이 아니라 어둠의 경로를 중심으로 쓰고 있다는;;;;;;;;;;;;;;;;;;;;;;;;;;;)
[불량공주 모모코]는 이미 보셨겠죠? 흐흐.
[폭풍우 치는 밤에]도 이미 보셨을 것만 같고
[샤이닝]은 어때요? 크리스마스 연휴에 가족 관계에서의 광기를! 흐흐흐;;;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스왈로우 테일 버터플라이]도 보셨을 것 같고
고등학교 땐가 본 [델리카트슨 사람들]도 다시 보고 싶은 영화에요. 지붕에서 톱을 켜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죠. 근데 이 영화 “18세 이용가”네요. 18세가 안 될 때 본 것 같은 기억이-_-;;;;;;;;;;;;; ㅎㅎ
[러브/쥬스]와 [메종 드 히미코], [청연], [판타스틱 소녀백서], [스윙걸즈] 등도 떠오르네요.
사실은 루인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을 고른 것이라는;;;;;;;;;;;;;;;;;;;;;;;;;;;;;;;;;;;;;; 흑, 죄송해요.
쭉 고르다가 문득, 30화짜리 일본애니메이션 TV판을 봐도 재밌겠다 싶었어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