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편두통

시간은 돌고 돌아 뮤즈의 두 번째 앨범을 듣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이 다시 왔어. 뮤즈를 듣지 않으면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뮤즈에게서만 위로 받을 수 있는 무엇이 있어. 그런 세월은 이제 끝난 줄 알았는데, 최소한 10년 안에는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닌가봐. 항상 귓가에 뮤즈의 음악이 울려.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제야 비로소 조금 진정할 수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으리란 걸 알아. 그러니 계속해서 반복할 수밖에.

낮에 선생님의 일을 도와주고 잠깐 상담을 하다가 편두통과 관련한 얘기를 했어. 루인에게도 있느냐고 물으신 선생님은, 자신은 정신신경과 상담을 받았다고 했어. 편두통이 위치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뇌졸증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하셨어. 살짝 놀랬어. 그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 그저 진통제로 연명하는 삶. 개운한 느낌도 없는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어.

루인은 편두통이 초등학교 1학년 즈음부터 있었다고 기억해. 그 전부터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게 무슨 두통이냐’며 혼난 흔적이 몸에 남아 있어. 그리고 그때가 초등학생시절인 것도 기억해.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루인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커피를 마셨어. 너무도 달콤했지. 편두통은 혈관 축소에 따른 현상이기도 한데, 커피를 마시면 신경 흥분에 따른 혈관 확장으로 일시적이나마 진정할 수 있어. 채식을 통해 좀 더 괜찮아진 건지도 몰라. 믿을 수 없지. 뇌졸증으로 쓰러진 사람이 식이요법으로 채식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콜레스테롤도 관련이 있다고 하니 그냥 추측일 뿐.

하지만 선생님은 상담을 추천하셨어. 젊을 때는 다들, 괜찮을 거라고, 진통제로 견딜 수 있다고, 논문만 쓰면 상담 받겠다고 말을 하지만,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면 결국 상담이 도움이 될 거라고.

글만이 루인을 위로할 수 있다고 믿어. 그러니 어느 날 이곳에서 숨더라도 다른 어딘가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겠지. 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이런 몸앓이를 했어. ‘루인에겐 글이 있어요’라는. 하지만 글은 언제나 자족일 뿐이고 그래서 넋두리에 가깝기도 해. 누군가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냐. 알아. 그나마 글이라도 있으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란 걸.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몸은 터져버릴 지도 몰라.

선생님이 상담을 추천한 건, 편두통이 심인성이기 때문이야. 심리적인 긴장, 몸에 오래 남아 있는 흔적들의 끊임없는 회귀. 이런 것들이 편두통을 자극해. 그러고 보면 최근 두통약을 자주 먹고 있어. 몸은 너무도 잘 알아서, 편두통 증상이 신호를 하면 얼른 약을 먹지. 그러면 통증이 좀 약해져. 개운하지가 않아. 답답해. 예전엔 개운하게 진통하는 약이 있었는데, 왜 루인이 좋아하는 약은 판매 중단하는 걸까.

루인이 상담을 떠올린 건, 현재의 몸이 불안해서 그래. 예전에도 직접 몸을 끌고 상담실까지 간 적이 있어. 인연이 아닌지 용기를 내어 찾아간 상담소는 문을 닫은 상태였지. 그리고 지금, 다시, 상담을 떠올리고 있어. 편두통이 불안한 게 아니라 우울증이 불안한 거야.

고백하건데, 루인은 우울증이 심했던 시절, 냉장고에 들어가는 욕망에 시달린 적이 있어. 한창 더운 여름이었고, 시체 썩는 냄새를 들키고 싶지 않은 루인은 냉장고를 떠올렸지. 냉장고는 안에서 열 수 없다고 들었거든. 하지만 루인은 우울증이 심할 때마다 몸에 깊은 흔적을 남겨. 하나 혹은 여러 개의 흔적들. 몸에 새겨진 흔적들을 보며 어느 시절을 떠올리지. 그러니 루인은 우울증이라고 죽지는 않아. 죽다니. 악착같이 살겠다고 다짐했는걸.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죽지 않을 거야. 하지만 다시 몸에 흔적을 세기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어.

이런 욕망을 품으면 몸은 나사가 여러 개 풀린 것처럼 행동해. 자꾸만 무언가를 흘리기 마련이지. 그렇잖아도 허술한 루인은 더 허술해지고 엉성하게 돼. 미안해. 자꾸만 이러고 있어. 하지만 이런 것도 루인이야. 이것이 루인이기도 해. 그러니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악착같이 살아남을 거야. 그러니 그 세월만큼 몸에 세기는 흔적들을 세며 시간을 견딜지도 몰라. 그렇게 남긴 흔적을 따라 살아가고 싶지는 않으니 언제나 비웃으면서 몸에 흔적을 남기겠지.

……………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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