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2007.05.07. 21:45, 아트레온 5관 7층 E-5
01
玄牝에도 볼 DVD는 충분히 있지만 DVD를 읽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저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어떤 긴장감 없이 느긋하게 늘어지고 싶었다. 영화를 읽고 싶다는 간절함은 사실 극장이라는 공간에 가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이럴 땐 어떤 영화라도 상관없다.
그런데 사실 영화관이 이렇게 그립다니,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하긴, 영화관은 루인이 가는 거의 유일한 일탈이다. 영화를 읽는 행위가 일탈이 아니라 평소 돌아다니는 동선에서의 일탈. 시간만 적당히 맞추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일탈. 그리하여 어떤 긴장감을 풀 수 있는 그런 공간. 물론 어떤 영화는 玄牝에 웅크리고 앉아 읽고 싶지만, 때론 극장이란 공간에서 읽고 싶으니까.
※영화를 봐도 크게 방해할 만한 스포일러는 아닐 듯.
02
이미 이 영화와 관련한 기사나 관련 정보를 접했다면 대충은 알 만한 내용: 이 영화를 진행하는데 있어 중요한 축은 나레이션이다. 감독은 영화를 진행하는 형식의 하나로 나레이션을 선택하고 그래서 영화 내내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레이션은, 안 하니만 못한 결과라고 느꼈다.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하거나, 대화를 하지 않으면 나레이션을 하는 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레이션은 영화를 전개하는데 있어 중심축을 이룬다. 그리고 이런 나레이션은 관객이 감정을 개입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할 지점 마저 없애고 “이런 식으로 이 장면을 느껴라”고 지시하는 역할을 하곤 한다. 그냥 두면 루인이 알아서 충분히 슬퍼할 부분에서, 나레이션으로 “슬픕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슬픈 감정은 사라지고 “아, 이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은 슬픈가보다”라는 바뀌었달까. 다른 영화였다면, 울었을 법한 장면에서 이 영화는 울 여지도 안 남긴다고 할까. (근데, 혹시 바로 이 지점이 감독이 의도한 걸까?)
이런 형식은 다른 한 편, 루인의 글쓰기 방식과 겹쳤다. 루인의 경우 감정을 과잉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감정의 과잉표현과 나레이션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건, 결국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고 느꼈다.
※어쨌거나 확실한 스포일러일 수도 있음
03
이 영화엔 반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반전이 무엇일까를 짐작하는 것이 이 영화를 읽는 또 다른 재미일 수도 있다. 근데, 좀 약하다는 느낌. 루인은 전혀 다른 반전을 기대했기 때문.
어제 확인하니 [필름2.0]과의 인터뷰에서 감독이 먼저 반전 내용을 밝혔으니 말하자면, 류덕환이 연기하는 아들은 아들이 아니라 아들의 친구고 아들은 이미 죽었다. 근데 기사제목을 통해 반전이 있다, 라는 말을 읽었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겠거니 했다. 대신 영화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죽은 준석의 “여자친구”가 아들이라고 예상했다. 아들이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젠더인데 차마 아버지를 못 만날 수 없어서 다른 친구가 대신 아들 역할을 한다는 상상. 아들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교도소에 돌아가려고 집에서 나설 때 “여자친구”가 멀리서 바라보는데, 그 장면이 마치 아버지에게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스포일러 없음
04
이 영화를 읽으며, 상당히 당황했던 건, “아버지의 아들”은 있는데 “엄마의 아들”은 없다는 점. 차승원은 휴가를 받으면 아들을 찾으러 가겠다고 하는데, 집에 가면 치매인 엄마가 있다. 근데 엄마를 대한 “아들”의 태도는 상당히 데면데면하다. 반면 아버지로서 아들을 향한 태도는 상당히 지극정성. 이런 연출에서 당황했다.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영화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엄마를 그렇게 배제해도 될까 싶을 정도이다. 집에 갈 때, 그리고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나설 때 인사하는 정도가 엄마와 마주하는 거의 전부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들도 잘 챙기고 엄마에게도 지극정성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루인이 경험하고 있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규범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유난히 “아들”에게 집착하는 맥락을 짚는 것이 의미 있는 작업이겠지.
차승원인 아버지와 류덕환인 아들이 집에서 마주했을 때, 류덕환은 친구와 전화하며 “손님”이 와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런 “손님”같은 관계로 엮어가는 “가족”을 그렸다면 더 흥미로운 영화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05
나름 재밌다고 낄낄 웃었던 장면. 차승원과 류덕환은 밤늦게 집에서 나와 달리기를 한 후, 갑자기 비가 내려 공중전화박스에서 비를 피하는데, 그때 벌레가 날아온다. 이 벌레가 어떤 종인지를 얘기하면서 차승원은 하루살이라고 주장한다. 류덕환이 안 믿자, 확인시켜준다면서 하는 말: (벌레의 눈을 응시하는 흉내를 내며) “너 어제 뭐했니?” 그러곤 주장한다. 대답이 없는 것 보니 하루살이지 않느냐고. 왠지 이 장면이 너무 재밌어서 깔깔, 거리면서 웃었다.
으하하하하 하루살이 진짜 웃겨요 ㅋㅋㅋ
그렇죠? 흐흐 영화관에서 혼자 자지러지게 웃었더래요. 크크
‘치사랑은 없어도 내리사랑은 있다.’라는 옛말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요..? 또한.. 아버지에 대한 헌정을 떠나서 감독 자신이 마초인 이유도 무시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ㅡ_ㅡ;;
와, 정말 그래요. “치사랑은 없어도 내리사랑은 있다”는 말이 딱인 것 같아요. 흐흐. 🙂
그러고보면, 감독의 작품이 계속해서 “남성”들 간의 연대를 중시하는 내용들이긴 해요. 지난 작품에서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너무 노골적이라서 “흥!”하고 콧방귀만 뀌고 말고 싶기도 해요. ;;;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