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제 있었던 특강 후기는, 기특하게도 발제문을 미리 썼다는 정도만 적으면 될 줄 알았는데, 왠걸 엄청 재미난 일이 있었다. 흐흐.
아는 사람이 자신의 동아리 후배들과 방학세미나를 하는데, 루인에게 특강을 해달라는 연락을 몇 주 전에 했다. 부르면 어디든 가는 루인이니(예의상 한 번 정도 망설이는 말을 하지만-_-;;; 흐흐) 한다고 했고, 그래서 어제가 그날이었다. 지난 몇 번의 특강경험 상, 발제문을 준비하지 않으면 중구난방으로 진행한다는 걸 깨달았기에, 어젠 발제문도 썼다. 주제는 “섹스/젠더, 그리고 트랜스젠더”였고. 오후부터 발제문을 쓰기 시작했으니 말 그대로 날림이었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기특하다”는 헛소리도 하면서 몇 장을 적었다. 크크크 -_-;;;
청탁한 지인이, 구성원들에 대한 우려를 많이 했기에, 이번 특강은 강의자체보다는 발제문을 썼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겠구나 싶었다. 물론 이런 경험들 하나하나가 소중한 경험이란 점에서 강의 자체도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그렇게 도착해서 세미나를 했고, 발제문을 설명하고, 토론시간을 가졌는데, 토론시간엔 익숙하지만 들을 때마다 재밌는 얘기도 있었다. 일테면, 다 좋은데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가 트랜스젠더다 혹은 동성애자다라고 얘기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 도대체 왜 트랜스젠더/동성애자가 되느냐 어릴 때 무슨 성적인 경험(성폭력)이라도 있었냐란 얘기도 나왔다. 한국사회에서 젠더를 구분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란 얘기도 있었고. mtf/트랜스여성이면 자신이 여성임을, ftm/트랜스남성이면 자신이 남성임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세미나에 참석한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이런 얘기만 했다는 건 아님! 이 글의 맥락 상 이 얘기들만 적을 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저녁 7시가 안 돼서 시작한 세미나는 9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열어둔 세미나실 문 앞으로 경비가 지나가다가 세미나 장면을 보더니, 큰 목소리로 “지금 나가세요”라고 했다. 첨엔 구성원들이 “10시까지 강의실을 빌렸어요”라고 대답했는데, 경비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학교 방침 상, 저녁 8시가 넘으면 “남학생”은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루인보고 나가라는 의미였다. 사람들 모두 당황했고 루인을 부른 지인은 경비와 직접 얘기해서 곧 나간다고 어떻게 무마했고, 그렇게 세미나를 정리했다.
경비의 등장이 정말 히트였는데, 어제의 세미나를 한 번에 정리해줬기 때문이다. 흐. 젠더를 판단하는 방식이 사람의 외모와 얼마나 밀접한지, 이런 판단 속에서 젠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호명될 때 어떤 부인과 부정을 경험하는지 등등. 토론시간에 나온 많은 질문이나 의문들을, 경비의 등장을 통해 아주 간단하고도 분명하게 해소했달까. 그전까지 했던 루인과 지인의 많은 얘기들이 무색할 정도였다. 흐흐.
토론자체도 상당히 재밌었지만(얘기가 별로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들 많은 얘기를 해서 좋았다), 경비의 등장으로 인해 정말 인상적이고 즐거운 특강이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