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합의의 시차

수업 시간에 잠깐 언급한 내용인데…

폭력은 무엇이고, 동의나 합의는 언제 시작해서 언제 종식되는 것일까를 질문했다. 폭력이 무엇인가도 어려운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동의나 합의는 언제 시작해서 언제 종식되는 것일까를 둘러싼 고민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유성애자여서 성적 관계를 맺기로 한 합의는 언제까지 유효한 것일까? 그 합의는 유효한 것일까? 20년 정도 전에 성폭력의 사후 구성과 관련한 논문이 나왔는데, 그 논문의 주요 쟁점은 성폭력 발생의 시차였다. 연애 관계일 당시에는 합의라고 생각했는데,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고민해보니 그것은 합의라기보다 강요였고, 강압은 아니라고 해도 마지 못해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논문의 중요한 통찰은, 성폭력은 자명한 사건이 아니라 사후 해석과 시차가 발생하는 사건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시차의 발생은 동의와 합의 개념의 시작에서 종식까지의 시간성을 고민하도록 한다. 어떤 사건이나 행위에 대해,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서약하면 동의나 합의는 완결되는 것일까? 아니면 동의나 합의는 계속해서 지연되고 종식될 수 없는 속성인 것일까? 종식될 수 없는 동의나 합의라면 어디서 폭력이 발생하고 어디서 친밀감이 구축되는 것일까?

뭐 이런 식의 질문을 했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 나 역시 충분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동의나 합의에서 시간적 완결성을 만드는 작업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과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니 최근 발생한 정치권의 ‘사건’이 떠오르는데, 복잡한 논의 지형을 소란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화가 난다. 나는 화가 나지만, 반성폭력 운동과 동의/합의를 둘러싼 논의를 오래 고민한 이들은 얼마나 속이 터질까 싶다.

피곤

뭐랄까… 회복이 안 될 것만 같은 피곤과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컨디션이 안 올라온다고 하면 표현이 되려나.

어제는 아침부터 계속 몸살 기운이 있어서 힘들었고 계속 졸리고 졸리고 으스스해서 결국 오늘은 휴가를 냈다. 집에서 고양이들에게 둘러쌓여서는 자고 깼다가 자고 또 자고 또 자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졸린다.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갈 예정이었는데 몸이 안 좋아 병원에 못 갔다. 내일 아침에 들려야지.

누가 컨디션 끌어올리는 방법 좀 알려주신다면 감사… 하지만 이건 개인차가 커서 결국 내가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데 지금 이 잡담을 쓰는 지금도 졸린다.. ㅎㅎ

보리의 10년

나는 묘한 불안이 있었다. 처음 키운 리카는 나와 함께한지 2년을 못 채우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날은 5월 말이었고 서울에서 퀴퍼가 열리던 날이었다. 리카는 여덟 아이를 남겼고 그 중 바람이 나와 함께 했다. 분양 보낸 아이들 중 한 아이에 대해 전해듣기를, 리카와 동일한 증상을 겪었고 어려운 고비를 거쳐 회복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묘하게 불안했다. 하지만 바람은 오래 오래 괜찮았고 불안은 불필요한 감정이라고 믿던 그 시기에 바람은 리카와 동일한 증상으로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다. 리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 당시 의사는 “원한다면 3차 병원에서 유전자 검사를 해볼 수 있다”고 했는데 당시 나는 초보 집사의 부주의함, 미숙함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때 의사의 조언을 받아 미리 유전자 검사를 했어야 할까. 하지만 검사를 받으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병원에서 검사용으로 끝날 것이라고 했으니, 다시 그때와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면 장례를 치뤄주기로 결정하겠지.

바람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난 이후 나와 함께 하는 고양이는 8년을 못 넘기는 것일까 불안했다. 나중에 보리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그 불안이 더욱 커졌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면 안 되는데 감히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과욕이 이런 사태를 만든 것이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보리는 좋은 의사의 치료와 간병 속에서 회복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처방사료만 먹고 있지만 그럼에도 보리는 건강하고 귀리, 퀴노아와 함께 잘 지내고 있다.

이제 보리는 태어난지 10년이 지났고 나와 함께 한지도 10년이 다 되어 간다. 뭔가 고맙고 다행이다. 보리의 10년은 내가 고양이와 함께 한 시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언제나 미안함과 고마움을 남겨주고 있다.

나의 소중한 아기들, 그리고 안녕, 나의 보리. 함께한 시간만큼 더 오래 함께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