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거미줄

어제는 붉게 타는 달이 뜬 밤. 나는 초라했어요.

피곤해요. 아침에 만난 어떤 사람은 밤새고 왔느냐고 물었죠. 잠을 잤지만 피곤해요. 쉬고 싶다는 느낌이 더해가는 날들. 그러고 보면 요즘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정신이 없어요. 뭔가를 잔뜩 하고 있는데, 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뭔가 빠진 게 있는 것도 같고. 그런데도 시간은 흘러가고 세월은 흘러가고.

일전에 [공격]을 읽을 때, [머큐리]도 같이 읽었어요. 주인공들의 외모가 꼭 나 같다고 느꼈어요. 너무 초라하고 못생겨서 얼굴을 들기가 부끄러워요. 누군가와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공격]의 주인공은 자신의 추한 외모에서 어떤 쾌락을 얻지만 전 그렇지도 않아요. [머큐리]의 그 사람처럼 살 수도 없고요. 그저 이렇게 흔해빠진 인생을 흔해빠진 체념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확실히, 나의 몸은 나의 욕망을 배신해요. 아, 이건 단순히 외모의 문제를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나는 나를 배신하고, 욕망은 언제나 몸과 갈등해요. 그리고 나는 초라해서, 아무렇게나 되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려요. 그래, 아무렇게나 되었으면 좋겠어. 그랬으면 좋겠어.

부리가 붉은 새. 가슴이 붉은 새. 그리고 발톱이 붉은 새.
아침마다 그 화살을 떠올리며, 잠시 잠깐 황홀할 뿐이에요.

어차피 지나가는 감정들, 이렇게 배설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감정들일 뿐인 걸요. 좀 자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씨익.

후치

아무리 봐도 이 사진은(부분 캡쳐 한 것) 오바스럽지만 지금 데리고 있는 아해는 이렇게 생겼지요. “sens Q 45C” 고요. 아직은 무척 잘 사용하고 있어요.

이 아해의 이름을 정하는 게 고민이었지요. 첨엔 간단하게 “까망”이라고 붙일까 하는 상상도 했고, “플루토”라고 부를까 하는 고민도 했죠. “까망”은 노트북이 까만색이라 지은 것. -_-;; “플루토”는 요즘 인기 있는 만화 제목을 딴 건 아니에요. 고양이 이름이죠. 혹시 고양이 이름으로 플루토 하면 떠오르는 게 없나요? 맞아요.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 [검은 고양이]에 등장하는 고양이의 이름이 플루토죠.

하지만 다른 이름을 더 고민하기로 하고,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최근 저의 관심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이름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렇게 두 가지 이름을 두고 고민을 했어요. “리세”와 “후치”. 만약 누군가가 “리세”란 이름을 듣고 출처를 바로 안다면 그 사람은 그냥 팬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후치”의 출처를 안다면, 단순히 팬이 아니라 오타쿠라고 부르겠어요. 크크크.

리세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4장,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황혼녘 백합의 뼈]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이죠. 흐흐. 하지만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후치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이제 노트북의 이름은 후치. 사실 이렇게 결정한 건 벌써 여러 날 전인데 이제야 확정한 건, 후치란 말의 어감이 입에 잘 안 붙어서 망설인 거죠. 이젠 입에 익었으니, 후치라고 불러야지요.

그럼 후치란 이름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단박에 파악하는 사람을 오덕후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M_ 이유 보기.. | 흐흐;;.. |

“질문하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되풀이 등장하는 책 속의 책이기도 해서 더한층 고심하여 만든 제목입니다. 아주 튼튼하고 괜찮은 타이틀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그 ‘구렁'[淵]이라는 단어는 일본어로 ‘후치'(ふち)라고 하는데요, 이 단어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어두운 흐름’입니다. 먼 옛날부터 존재하던 여러 가지가 푹 잠겨 있는 그런 이미지, 그야말로 ‘책’을 뜻하는 이미지겠지요. 그 한자 자체가 어둡고 깊은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온다 리쿠, [판타스틱] vol.8, 2007.12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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