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지금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는 걸 느끼는 건, 연구실이 시원해서만은 아니다. 사무실 문이 바람에 왔다 갔다 해서만도 아니다. 루인 책상의 책장에 끼워 둔 무지개깃발이 펄럭여서만도 아니고. 예전에 쓴 적이 있는 사무실 창문 너머의 풍경 덕분이다. 바람이 불면, 사무실 창문 너머에 있는 작은 언덕의 울창한 나무들, 나뭇가지들,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 바람과 나무-나뭇가지-나뭇잎들이 서로 몸 부비는 소리가, 조금은 무시무시하면서도 시원하고 즐겁게 들리기 때문이다. 길을 걸을 때의 바람은 머리카락을 통해 느끼지만, 연구실에 있을 때면 바람-나무의 소리로 느낀다. 이럴 때면, 이렇게 바람-나무의 소리를 눈을 감고 듣노라면, 지금 여기가 서울의 도심이 아니라 어릴 적 모계/부계 할머니 댁에 놀러간 날의 어두운 밤과 같다. 시골집 뒷산의 나무-바람 소리, 뒤뜰의 대나무-바람 소리가 떠오른다.

조금 슬픈

며칠 전, 친구가 연구실에 놀러왔다. 같은 건물 혹은 인접한 건물에 상주하니 자주 만날 것 같으면서도 가끔 연락하고 만나는 사이. 그날 저녁엔 연구실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루인에게 “루인이 저번에 우울증과 관련한 얘기를 했는데, 그래도 루인이 우울증인 건 아니죠?”라고 물었다. 물론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다른 친구들 중엔, 우울증인 친구는 기본이고 조울증에 또 다른 진단의 친구도 있다고, 아침에 한 친구로부터 이와 관련한 전화를 받고 종일 우울해 하고 있다고. 그러며 다시 물었다. “루인은 우울증 아니지 않느냐”고. 우울증일리가 없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우울증이 아니라고.

이런 말에 뭔가 다른 말을 할까 했다. 우울증을 표현하는 증상은 여러 가지라고,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우울증이 아닌 건 아니라고, 또 심리학에서 말하는 우울증과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우울증은 다른 것 같다고. 등등의 말들을 할까 했지만 결국 제대로 안 했다.

친구가 바라는 건, 그냥 “아니에요”였다. 그렇다고 “아니에요”라고 대답을 한 건 아니지만. 친구가 바라는 건, 자신의 친구 중에 우울증이 아닌 사람이 한 명 있는 것이었다. 친구가 하는 얘길 듣다가 이런 느낌을 받았다. “우울증 아니에요”란 대답을 통해, 어떤 안도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고. 주변의 친구들이 거의 다 우울증이라, 때론 그 걱정으로 종일 안절부절 못 하니까, 적어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루인 만은 우울증이 아니길 바라는 어떤 심정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친구 중에 누가 우울증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를 찾다가, 우울증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없다는 “통념”을 빌려, 루인을 떠올렸으리라.

뭐, 따지고 보면 루인이 의학적으로 우울증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은 적은 없으니까. 한 사람의 병은 의사를 통해서만 인지 받을 수 있는 세상이고 우울한 감정에 빠져도 우울증인지의 여부는 언제나 의학이 결정해주시다보니, 루인이 우울증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 “이다”라고 말하나 “아니다”라고 말하나 마찬가지다. 어제 어딜 갔다가, 친구와 나눈 얘길 떠올리며 어떻게 대답해도 마찬가지라면, 그냥 “아니에요”라고 대답할 걸 하는 뒤늦은 안타까움에 빠졌다.

사실 그 친구도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은 적이 있다. 그래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덥다

이 사무실도 더운 날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덥다. 비록 바깥 날씨보단 시원하다고 해도, 더운 건 더운 거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날 정도의 날씨. 장마철이라 후덥지근하다. 근데 아직까지 선풍기를 안 켜고 있다. 선풍기 사용도 결국 습관이라, 한 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볼려고. 근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흐흐. 아무려나 저녁이 되면 쌀쌀한 날도 있으니 이제 몇 시간만 버티면 된다. 아, 이 미련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