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자님이 배인의 커밍아웃과 관련해서 인터뷰를 요청하며 질문을 몇 개 보내왔다. 하지만 내가 아이돌문화와 케이팝산업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다른 전문가에게 요청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답을 하며 작성했던 내용…
기자님의 질문 중에 배인의 커밍아웃이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논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를 물어보셨고, 나의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배인의 커밍아웃이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논의 확대”로 이어지기보다, 한국에서 퀴어 인권 운동과 연구의 지속적 확장이 배인의 커밍아웃을 가능하게 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이것은 홍석천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하면서 퀴어 인권이 확대된 것이 아니라, 1990년대 퀴어 인권 운동의 다양한 노력이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가능하게한 사회적 토대를 만들었듯, 배인의 커밍아웃 역시 마찬가지죠.
좀 더 풀면, 홍석천의 커밍아웃은 대중적으로 어떤 인상을 남긴 것은 맞지만, 그 커밍아웃은 1990년대 내내 한국에서 퀴어 운동과 연구,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무수히 많은 활동가의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곧바로 홍커지모가 설립될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배인의 커밍아웃 역시 이전에 있었던 무수히 많은 아이돌, 연예인의 커밍아웃 그리고 30년이 넘는 퀴어 인권 운동, 퀴어 연구 등의 노력이 축적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가장 직접적으로는 연혜원님이 편저한 <퀴어돌로지> 같은 작업!!). 이를 망각하고 마치 연예인의 커밍아웃이 운동이나 연구에 일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질문한다면(기자님의 질문이 이런 의도는 아니었을 것인데, 그저 이전에 나온 다른 많은 기사에 나는 빡친 상황이어서) 이는 역사를 삭제하고 새로운 최초를 생산하는 것이 될 뿐이다.
이와는 별도로, 몇몇 언론에서 홍석천 이후 “25년 만에 배인이 두 번째로 커밍아웃을 한 연예인이 됐다”는 기사들은 진짜 열받는다. 이것은 명백하게 가짜뉴스고, 한국 퀴어 역사, 커밍아웃에 대한 조롱이라 할 수밖에 없다. 아니 올 1월에 <퀴어 한국사>가 나왔다고요.
(나는 역사를 삭제하고 계속해서 최초를 생산하는 행위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흥분하며 화를 내는 듯…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