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룬 글 쓰기/쓰지 않기

“world without stranger”라는 내용의 글을 쓸까 했었다. 아마 지난 주 목요일 즈음에.

world without stranger는 거리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옷의 로고이며 루인도 두 벌 가지고 있다. 이 말이 불편했고/하고 몇 가지 사항에의 몸앓이가 들어서 정리할 겸 했는데 결국 쓰지 않고 있다. 몸앓이가 든 그때의 메모 그 상태로 지금껏 방치하고 있다. 앞으로도 쓸 것 같지 않다.

쓰겠다고 작정을 했을 때 쓰지 않으면 다시 쓰기 어려운 글들이 있다. 아니, 거의 모든 글이 그 시간을 놓치면 다시 쓰기가 어렵다. 그러다 그 주제로 다시 써야겠다는 강한 동기 부여가 발생하면 쓰기도 하지만 어지간해선 그런 경우는 안 생긴다. 그 순간, 그 어느 찰라가 아니면 미룬 글은 몸의 어느 곳에서만 맴돌 뿐이다.

이렇게 미뤄둔 글들이 몸의 곳곳에 숨어 있다. 다시는 활자화 되지 않을 내용들이며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툭, 하고 튀어나와 삶을 흔들기도 하겠지만,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나른하고 게으른 하루

늦잠을 잤다. 딱히 피곤할 일도 없는데. 우울해서 그런거다. 어떤 사람은 우울증이 밤에 심하다지만 루인은 그 정도가 아침에 가장 심하다. 그래서 우울증이 심해지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 오늘, 우울증이 심해진건 아니다. 아주 조금 침울해진 것 뿐이다. 평소처럼 눈을 떴지만 일어나길 미루며 다시 잠들기도 하며 8시를 훌쩍 넘겨서야 일어났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다보니 오전이 다 지나가 버렸다. 빨래를 한다는 건 조금은 유쾌한 일이다. 물과 오랜 시간 접할 수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뭔가 씻겨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몸에 새겨진 기억들도 저렇게 씻어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씻겨진 옷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빨래를 한 흔적이 옷에 남기 마련이다.

나스타샤(Nina Nastasia가 아님)랑 조금 놀다가 숨책으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금요일이 숨책 가는 날이지만 어젠 친구 연극을 보러 갔기에 장 보러 갈 겸해서 나섰다.

갔다가 “숨”과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아마 “숨”이 없었다면 지금의 루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루인은 과정 중에 있다.) 정희진 선생님을 만난 것만으론 부족했다. 선생님의 글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공부방법에 대한 태도/자세를 의미한다. 지식자랑에 급급하던 루인에게 그럴 거라면 공부하지 말라고 말해줬던 이가 “숨”이다. (물론 루인에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런 말을 하던 당시엔 지금 만큼 친하지도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 “숨”은 그런 말을 했고 그것은 루인에게 비수처럼 다가왔다.) 텍스트를 읽을 때도 어떻게 읽을 것인가로 많은 얘기를 나눴고 그것이 지금의 루인을 이루는데 중요한 반석이 되고 있다. 오늘도 얘기를 나누며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주고받았다. 그러니 “숨”과의 만남이 설레고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돌아오는 길에 장보러 갔다가 콩으로 만든 유부를 샀다. 오홋. 처음엔 호기심으로 들여다봤는데 비건vegan인 루인이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이었다. 그래서 냅다 샀다. 괜찮으면 주중에 가끔 도시락으로 싸갈까 한다(과연? -_-;;).

…이렇게 토요일이 지나간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은 주중의 바쁜 일정으로 못 본 동영상들을 볼 예정. 이힛.

울고 싶어 지다

친구의 연극 공연이 있어 보고 왔다. 이번엔 무대엔 올라가지 않고 의상을 담당했다고 한다. 작년엔 직접 대본을 썼고 올 봄엔 대본과 연출까지 했던 친구이다.

연극을 보며 울고 싶어졌다. 울음이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며칠 전, 혹은 꽤나 오래 전부터 울고 싶어졌다. 울음이 몸을 타고 도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음. 그런 상태로 여러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울음을 터트려 줄 무언가를 기다리면서도, 그냥은 눈물이 흐르지 않은 그런 날들.

연극을 보면서 왈칵, 눈물을 쏟으며 울고 싶어졌다. 사람이 죽어 떠나는 장면에서 왜 울음이 나왔던 것일까. 그 장면은 마냥 슬픈 장면은 아니었는데. 그 장면 때문이 아니라 그 장면을 빌미로 해서 울음을 쏟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장면은 금방 전환했고 조금만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눈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

연극은 좋았다. 연기를 탁월하게 잘 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울고 싶어졌고 눈물이 흘렀고 그래서 좋았다. 이렇게 자극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니까.

연극이 끝나고 나와 비에 젖어 있는 길을 걸으며 이번 주말엔 펑펑 울 수 있는 상황에 빠지리라,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