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번, 노래 한 곡을 무한 반복해서 듣는다.
두근거림은 때로 마음을 할퀸다. 할퀸 흔적이 선명하지만 마음은 또 두근거린다. 두근거리다 부푼 마음은 기어코 터져 붉은 피를 흘린다. 피가 흐르는 자리마다 햇살이 반짝인다. 눈이 부시다. 부신 눈으로 계속 걷는다. 낯선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을 잃은 마음은 햇살이 빛나는 곳이, 눈이 부셔 시력을 잃은 곳이 갈 곳이란 걸 안다. 노래는 계속해서 흐르고 할퀸 흔적마다 소금꽃이 핀다.
[카테고리:] 몸에 핀 달의 흔적
주절주절: 페르세폴리스 득템, 다른 가치로 사는 삶, 기분
01
『페르세폴리스』 세트 득템. 헌책방은 아름다워라!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음하하.
02
삶의 가치가 다른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참 묘해요. 규범적인 가치를 살기위해 애쓰는 사람과 잉여로 여기는 가치를 살기위해 애쓰는 사람. 각자의 행복과 가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분은 참 묘해요. 그건 제가 모르는 삶이기 때문이죠.
며칠 전 제가 무척 좋아하는 스타일의 논문을 읽었어요. 그 논문의 요지는 간단했습니다. 어떤 정치학에서 특정 규범을 비판하는 건 좋지만, 그 규범을 비판하면서도 욕망하거나 얼마간 바라거나 알고 싶은 감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뤘죠. 아마 이런 거겠죠. 저는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규범적인 삶의 방식, 행복의 이상에 도달할 수도, 도달할 의지도 없죠. 그래서인지도 몰라요. 그런 삶을 살거나 지향하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요. 대충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그러한 삶을 산다는 것이 규범에 매여 있다거나 수동적이라거나 뭐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어떤 삶의 방식이 더 우월하고 덜 우월하다는 식의 구분을 어떻게 제가 할 수 있겠어요. 그저 제가 평생 알 수 없을 가능성이 큰 그런 삶, 그런 삶을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한거죠. 아, 물론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선 상당한 자원이 필요하죠. 집안 배경, 학력이나 학벌, 젠더, 섹슈얼리티 등등. 몰라, 몰라요. 고민할 수록 골치 아파요.
그러고 보니 오전에 우체국에 갔다가 입사원서를 작성해서 우편으로 발송하려는 사람을 몇 명 봤습니다. 신기하더라고요. 전 그런 거 쓴 적이 없어서. ;;; 대학원 입학 원서는 쓴 적이 있긴 하지만요 …. 하하. 암튼 제가 일한 곳은 이력서나 기타 서류가 아예 필요 없거나 엉성하게 대충 작성해도 되는 곳이었거든요. 알바라 지원만 하면 받아 주는 곳이라서요. 아, 제가 비장애인이고 한국인국적을 의심받지 않는 외모라서 지원만 하면 일할 수 있었겠죠.
03
하루 종일 기분이 폭등과 폭락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후후.
주절주절: 의학-기술-몸-젠더, 글쓰기 등등
할 말이 있었는데, 꽤나 중요한 말이었는데 까먹었다. 악! ㅜ_ㅜ
01
오랜 만에 특강을 하기로 해서, 준비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이번 강의 내용이 다음주 말까지 마감해야 하는 원고의 바탕이기도 해서 더 그렇다. 강의를 듣는 사람은 대학생이고 원고가 실릴 잡지를 읽는 사람은 대학생부터 좀 배웠고 이론 좀 읽었다는 사람들이다. 물론 트랜스젠더 이슈를 강의한다는 건 독자가 누구건 상관없다. 다들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의 욕심과 독자/청자의 기대 사이에서 수위를 조율하는 건 늘 쉽지 않다. 10년의 내공이 쌓인 것도 아니고, 매우 어설픈 지식에 어정쩡한 체계를 갖춘 나로서는 더 어렵다. 말하고 쓰는 나도, 듣고 읽는 이들도 모두 난감한 상황일 때도 많다. 물론 모든 빼어난 강사들도 이런 과정을 거쳤겠지? 그들도 어설펐던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 믿으며 위로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있었던 청중들은 어쩌란 말이냐! 흑흑.
02
몇 주 전, 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한국어로 쓴 논문 중에서, 섹스 혹은 생물학적 성이란 것이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었음을 설명하는 논문이 매우 적다는 얘길 듣고 놀랐다. 두꺼운 책이 있긴 하고(『섹스의 역사』, 책은 두껍지만 서론만 읽어도 충분하다;;;) 여성학 교제라고 불리는 책들마다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성, 의료기술을 통해 구성되는 몸과 젠더의 관계를 집중해서 다루는 논문은 별로 없다고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충분히 쉬우면서도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논문이 없다고 한다. 의학의 사회문화사를 다룬 괜찮은 책은 젠더나 섹슈얼리티란 범주를 간과하는 식이다.
사실 이번에 쓰고 있는 글의 주제가 대충 이런 거다. 근데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학-기술-몸-젠더란 주제어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주제다. 그래서 관련 글을 읽을 때마다 깨달음의 황홀을 느낀다. 흐흐. 하지만 이를 글로 쓰는 건 전혀 다른 문제. 흑.
03
추석이라 부산에 갔다 왔다. 엄마 님과 얘기를 나누다 재밌는 순간이 있었다. 엄마 님은 언제나 내가 의사가 되길 바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마 님이 워낙 아픈 곳이 많다보니 의사 자식 덕을 보고 싶었던 것. 하지만 난 이과에선 수학을 전공했고, 실험보다는 인문학 서적을 좋아하는 인간이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했다. 위에서도 적었듯,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책 중엔 의학사상사나 의학 발달과 관련 있는 책들이 여럿 있다. 의사는 안 되었지만, 의학이 몸을 통제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공부하는 사람이 될 것 같긴 하다. 크크크.
아이러니는 하나 더. 부모님은 내가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종에 취직하길 바랐다. 평생 돈문제로 고생했으니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바람이다. 하지만 나는 프리터처럼 평생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직종에서 살기를 바란다. 근데 또 내가 흥미롭게 읽는 주제 중 하나는 국가가 국민/시민을 관리, 통제하는 방식이다. 뭐, 이런 식이다.
04
두근거림이 결국 나를 구원할 거야!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