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할퀸 자리

하루에 한 번, 노래 한 곡을 무한 반복해서 듣는다.

두근거림은 때로 마음을 할퀸다. 할퀸 흔적이 선명하지만 마음은 또 두근거린다. 두근거리다 부푼 마음은 기어코 터져 붉은 피를 흘린다. 피가 흐르는 자리마다 햇살이 반짝인다. 눈이 부시다. 부신 눈으로 계속 걷는다. 낯선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을 잃은 마음은 햇살이 빛나는 곳이, 눈이 부셔 시력을 잃은 곳이 갈 곳이란 걸 안다. 노래는 계속해서 흐르고 할퀸 흔적마다 소금꽃이 핀다.

붉은 꽃: 감정

붉은 꽃 피고 진 자리에 남겨진 흔적.
붉은 꽃, 활짝 핀 자리보다는 피지 못하고 시든 자리가 더 선명하고 오래 남아. 응어리처럼 고여선, 오래도록 피지 못했음을 알려주지.

사실은, 정작 나 자신의 감정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어. 아니, 나의 감정 상태는 언제나 뒷전이라는 걸.

그래, 그래서 슬프니? 슬펐니? … 응. 그런가봐.
근데 기쁘니? 기뻤니? … 응, 기쁘기도 했던 것 같아.
혹은 그때, 그 순간, 먹먹했던가.
감정은 언제나 복잡하게 얽혀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하면서도 울 기회를 찾고 있어.

오랜만에 “공허”라는 단어를 썼어. 루인의 상태를 설명하며 [Run To 루인]에 “공허”란 단어를 쓴 적은 거의 없는데. 지금은 “공허”, 그러다 어느 순간 “빈곤”을 얘기하겠지. 아냐. “공허”와 “빈곤”은 그저 설명하는 언어일 뿐,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은 같아.

붉은 꽃이 피고 진 자리의 흔적. 이 계절이 오고 반팔을 입는 시기가 오면 이렇게도 신경 쓰여. 혼자서 자꾸만 신경 쓰고 있어. 별거도 아닌데 자꾸만 신경 쓰여서 이렇게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어. 이제 그만 말해야지.

붉은 꽃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이 선명하다.

길을 걸을 때면 종종 아무 문장이나 만든다. “눈을 감으면 눈이 분시다.” 아냐, 아냐. “감은 눈 사이로 붉은 물결이 인다.” “붉게 핀 꽃이 시들며, 팔에 흔적을 남긴다.” “팔에 핀 붉은 꽃의 흔적들이, 부끄럽다.”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이, 종종 부끄럽다.”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이 선명할 때마다, 숨고 싶다.” 하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닌데. 괜히 팔을 숨긴다. 몸에 새겨진 흔적들. 누구나 자기만의 방법으로 세월을 견딘다. 시간을 견디며 몸에 새긴 흔적들, 세월을 견뎠음을 알려주는 흔적들.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은 세월 속에 색이 바래지만, 그렇다고 아주 사라지진 않는다.

허수경의 시집에서였나, 공후인이란 악기는 악기의 형태는 남아 있지만 연주법은 남아 있지 않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있다.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은 남아 있는데, 왜 그랬는지, 이제는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왜.

언제나 그렇듯,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못 하기 마련이다. 에둘러, 에둘러 몇 번을 에둘러 표현을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 말이 자꾸만 몸에서 맴돌면, 붉은 꽃 피고 진 흔적을 바라본다. 그러면 다 잊는다. 아니,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고, 아침에 학교에 왔다는 사실이 까마득한 옛날 같다. 그러니, 지금까지 살아 왔듯, 계속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