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퀴어문화축제가 끝났고, 퍼레이드도 끝났다. 물론 난 참석할 수 없었다. 다른 곳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으니까. 아쉬움을 달래려고 사람들의 후기를 검색하다 사진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사람들의 얼굴이 드러나는 사진들. 어떤 사진은 흐릿하고 어떤 사진은 약간의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그래도 알아 볼 사람은 다 알아 볼 수 있는 사진들이다. 사진을 올린 사람이 “흐리게 나왔지 않느냐”고 항변하면 할 말이 없지만, 알아 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아 볼 수 있는 사진들.
사진 촬영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사진 촬영 거부는 더 골치아프다.
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카페에서 일을 한다. 내가 머무는 카페는 어떤 이유로 언론에서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가끔씩 방송사에서 촬영을 오기도 한다. 주인장과 인터뷰도 하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카메라도 함께 온다. 카메라 감독은 영상을 위해, 방송 내용을 위해 촬영을 한다. 그리고 난 그럴 때마다 신경이 곤두 선다. 내 온 신경은 카메라에 집중한다. 그리고 행여라도 나를 촬영하면 난 바로 손을 저으며 촬영을 거부한다. 하지만 이 거부를 금방 받아들이는 이는 드물다. 조금 더 촬영하다 관두는 시늉을 한다. 그렇다고 이미 촬영한 부분을 지우는 것도 아니다. 초상권 침해가 아니니 촬영해도 괜찮다는 의미일까?
사진을 찍을 권력이 있다고 믿는 이들과 사진을 찍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 이들 간의 긴장 관계.
얼마 전엔 영화 [3*FTM]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사진 촬영과 관련한 골치아픈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출연자들도 함께 자리를 했는데, 어느 관객이 그 장면을 촬영한 것. 거의 한 시간 동안 실랑이를 한 끝에 메모리카드를 찾아 자료를 삭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자긴 감독과의 대화란 행사를 촬영하는 게 취미라고 했다. 그 메모리카드엔 다른 ‘감독과의 대화’ 행사를 촬영한 사진들이 있었다고 한다.
촬영에도 윤리가 있다고 말하기엔 하나하나 너무 피곤한 일이다.
02
진로를 새롭게 고민할 상황이다.
다니던 학교에 같은 전공 박사과정이 생길 가능성이 상당했었다. 들리는 소문엔 95% 수준으로 생긴다고 했다. 하지만 부결되었단다. 진로로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심란했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었기에 조금 당황했다. 물론 놀라진 않았다. 생기기 전까진 생긴 게 아니고, 반신반의했으니까. 그저 진로 고민의 방향 자체가 상당히 많이 달라져 난감한 정도랄까.
박사과정이 생기지 않아 난감하지만, 만약 처음부터 박사과정이 있었다면 난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했을까? 글쎄, 아마 지금처럼 쉬었을 거 같다. 바로 진학하지 않았을 거 같다. 어떻게 할지 계속 고민 중이다. 아쉬운 건 고민할 시간이 충분하진 않다는 것.
03
학회 일이 끝나면 외국 여행이라고 갔다 오고 싶은 바람을 품고 있다. 물론 정말 갈지는 모를 일이지만. 여행을 무척 싫어해서 MT와 같은 행사도 잘 안 가는데 외국 여행이라니. 하지만 한국이 아닌 곳에서 조금 쉬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꼭 외국일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외국에 가도 호텔에만 머물 가능성이 크고, 그곳에서 블로깅만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우려할 사항이다. 흐흐.
[카테고리:] 몸에 핀 달의 흔적
또, 근황
01
바빴던 한 주가 끝났다. 두 개의 회의와 하나의 학술행사를 준비하면서, 좀 정신이 없었다. 물론 혼자 한 건 아니다. 준비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고, 덕분에 좀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모든 일을 점검하거나 책임져야 하는 위치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불안했다. 확실히 난 다른 사람들에게 업무를 분담하고 중간에 조정하는 일보단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 총괄보다는 내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역할. 절대 앞에 나서지 않는 역할. 이런 성격 때문인지, 자신의 성격과는 상관없이 총괄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은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런 역할을 맡을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그래서 좋은 결과를 끌어내는 이들을 때로 존경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고위직에 오르려는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신기하다. 그 엄청난 책임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02
중간에서 소통을 담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시는 안 볼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첨엔 황당하고 화가 났지만, 나중엔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가 만든 거라고 수긍하기로 했다. ‘쿨~’하게 “우린 서로 달라”란 식으로 수긍하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수긍하지 않으면 타격이 너무 클 거 같아서.
혹시나 이와 관련해서 무언가를 짐작하시려는 분은 삼가주시길.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시길.
03
어제는 퀴어 퍼레이드였는데, 참가할 수 없어 아쉬웠다. 사실, 학술대회 마지막 세션이 반 쯤 진행되었을 무렵에야 ‘지금쯤 퍼레이드가 끝났겠다’, ‘무사히 잘 끝났을까’하는 고민이 떠올랐다. 그전까진 워낙 정신이 없었고, 이것저것 수습한다고 분주했다.
학술대회와 퍼레이드 일정이 겹친 걸 깨닫고, 부모님 팔아서 퍼레이드에 참가할까 란 고민도 아주 잠깐 했다. -_-;; 흐흐. 직장인들이 밤새 술을 마시려고 직장 상사의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핑계를 대는 것처럼. 흐흐. 학회 간사를 시작할 때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자기 결혼식과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일이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학회 행사에 빠질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난 이 조건을 수락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부모님을 팔까 했는데, 행여나 조문을 온다고 할까봐 관뒀다. 더욱이 이런 건 쉬 들키기 마련이라, 나중이 더 힘들다. 내년엔 퍼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겠지.
그래도 아침에 받은 문자로 무척 힘이 났다!
04
피곤하지만 어쨌든 긴장은 좀 풀렸다. 이제 다시 행사를 준비하기 전의 몸으로 바꾸는 일이 남았다.
근황: 주절주절
01
너부리 님의 표현을 빌리면, “매주 가장 바쁜 주를 갱신하며 산다.” 일이 많았던 건 아닌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들이라 조금 분주했다. 5월부터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번 주가 끝나면 좀 여유가 있을 듯. 5월부터 시작해서 이번 주가 고점을 찍을 거 같다. 그러고 나면 공포의 10월, 11월까진 여유가 있을 듯하다. 이 두 달 동안 학회 업무 인수인계, 학회 추계학술대회 준비 및 진행, 글 두세 편, 지렁이 협력사업 보고서 작성, 가을부터 시작할 어떤 프로젝트 글쓰기,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정리 등등을 해야 한다. 덜덜덜.
02
지난 달 다이어리를 정리하다, 영어 논문, 한글 논문과 같은 글을 제외하고 단행본만 18권을 읽었단 걸 깨달았다. 살짝 당황했다. 악착같이 읽었구나 싶겠지만 그게 아니다. 책을 읽는 리듬을 되찾은 것뿐이다. 독서에도 흐름이 있고, 리듬이 있다. 한 번 잃으면 다시 찾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리는데, 2월부터 애쓴 결과다. 소설을 중심으로 인문사회학 관련 책들을 중심으로 읽고 있다. 물론 책과 논문은 도피 수단으로도 최고다.
03
헌책방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사는 책도 많다. 지지난 주엔 주인장들(난 사장이란 표현보다 주인장이란 표현이 정감 있어 좋아한다, 이 표현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어 좀 그렇긴 해도;;)이 책을 그만 사라고, 하루에 한 권 이상 안 팔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만날 ‘오늘은 책을 안 살 거야’라고 다짐하지만 끌리는 책을 만나면 어찌할 수가 없다. 다짐을 단단하게 해서일까, 지난주엔 많이 줄였다. 이번 주엔 한 권도 사지 않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과연?
04
책방에서 일하며 좋은 건, 책을 읽건 글을 읽건 무언가를 읽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거다. 인터넷도 할 수 없고, 후치와 놀 수도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읽는 것뿐이다. 바쁠 땐 그 시간이 아쉽지만 그래도 이렇게 충전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하루의 긴장을, 일을 하며 푼다.
05
나의 생활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따지니 참 기묘했다.
현재 비정규직으로 하고 있는 일은 두 개다. 학회 일과 책방 알바. 학회 일은 11월로 끝나고 책방 알바는 정확한 기약은 없어도 언젠가 끝난다. 근데 비정규직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나의 정규직은 활동과 공부/학생인데 이 둘은 생계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과 농담으로 자주 하는 얘기인데, 활동만큼 확실한 정규직도 없다. 자신이 원한다면 평생 할 수 있는 직종이다. 사 소 한 문제라면 생계엔 도움이 안 된다는 것. -_-;; 하지만 일 자체가 즐거우니(혹은 괴로우니) 괜찮다. 학생/공부란 일도 내겐 일종의 정규직이다. 가끔 생활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가끔이다.
06
생활비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지만, 웃기게도 최근 하루에 한 끼를 간신히 먹는 상황이다. 바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_-;; 카페에서 일하는 날이면 그나마 두 끼를 챙겨 먹을 수 있는데 학교에서 일하는 날이면 그냥 저녁에 한 끼만 먹는다. 학교에 들어가면 밖에 나가는 게 귀찮아서 그냥 버티는 거다. ;;; 돈이 굳어서 좋긴 한데 몸이 위태롭다.
07
피곤해서인지 제대로 안 먹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두통이 잦다. “뒷목 잡고 쓰러진다”고 할 때의 뒷목에서 통증을 느낀다. 탁, 탁, 때리는 듯한, 튀는 것 같은 통증이다. 편두통이 도지면 뒷목이 아팠지만, 이번엔 새로운 유형이다. 오오, 신기하다. +_+
08
자막 작업을 했지만, 정작 영화제 기간 동안은 극장에 안 들어갔다. 자막에만 신경 쓸 거 같아서. 일테면 ‘아, 저기선 1초 정도 시간을 더 줘서, 사람들이 읽기 편하게 해야 했는데’라거나, ‘저기선 0.5초 정도 자막이 늦게 나왔어야 더 좋았을 텐데’라거나, ‘저 자막은 저렇게 말고 좀 다르게 끊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고민만 할 거 같아서. 흐흐
영화제 자막은 한 줄에 11자, 한 번에 총 두 줄이 등장할 수 있다. 영화제에 간 적이 있다면 아실 듯. 그래서 한 번에 띄어쓰기 포함 최대 22자를 출력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글자를 어디서 끊는 게 좋을까로 고민한다. 글자의 개수로 끊어야 사람들이 읽기 편할지, 단어를 단위로 끊어야 사람들이 읽기 편할지와 같은 고민이다.
“난 단지 내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란 문장을 예로 들자. 이 문장을 끊어주지 않으면 자막 화면에 나오는 글자는 “난 단지 내 삶을 살고 싶”까지는 완전하게 나오고 “을”은 윗부분에서 잘린다. 그럼 “싶”과 “을” 사이에서 끊는 게 좋을까, “살고”와 “싶을” 사이에서 끊는 게 좋을까와 같은 고민을 하는 거다. 흐흐. 이 문장을 한 줄로 출력하고 싶으면 “난 단지 내 삶을 살고 싶다”로 수정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다”가 잘려 나온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 하나는 결국 두 줄로 출력하는 것. 다른 하나는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다시 한 번 글자의 개수를 줄여 “난 내 삶을 살고 싶다” 혹은 “단지 내 삶을 살고 싶다”, “내 삶을 살고 싶을 뿐”과 같은 방식으로 바꾸는 것. 자수를 줄일 때 부담스러운 건 뉘앙스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 영화관에 가면 자막 기술에 더 신경 쓸 거 같다. 내년에도 자막 작업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더 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