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달콤했던 오늘 하루.
니나 나스타샤의 목소리 같은, 노래 같은
Notwist의 “The Devil, You + Me” 같은
달콤함으로
가득했던 오늘 하루.
안녕.
이제, 안녕.
[카테고리:] 몸에 핀 달의 흔적
우리 마을 이야기3
사건일지 6: 황씨. 입주자. 3-2001 거주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했으니 우연이죠. 원래 조퇴가 안 되는 회사인데 그날 제 몸이 좀 많이 안 좋았어요. 아침에 회사에 가서도 계속 엎드려 있어야 했죠. 열이 많아서, 그날 아침 회사 입구에서 사장님과 마주쳤지만 못 알아 볼 정도였죠. …. 당신도 출퇴근 하는 입장이니 알 것 아닙니까. 공무원이라 모르나 …. 아, 아닙니다. 그냥 혼자 한 말이에요. 암튼 요즘 워낙 불경기인데다 회사 규정이 엄격하고 요즘 인사고과 기간이거든요. 그러니 별 수 있어요?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 가지 않는 이상 회사에 가야죠. 그저 칼퇴근이나 노릴까 했는데, 팀장님이 외근 가는 것으로 처리할 테니 집에 가서 쉬라고 해서 간신히 일찍 퇴근할 수 있었죠.
시위 하는 건 그날 처음 봤어요.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 늦게 퇴근하고, 혼자 사니까요.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었고, 워낙 사람들 만날 시간이 없잖아요. 지난 아파트에선 이웃들과 간단한 인사는 하고 지냈죠. 근데 이번엔 이상하게도 사람들과 마주칠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애가 앉아 있는 걸 보고 낯설었어요. 이 동네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싶었달까요. 더욱이 시위하는 장면이 꼭 사람 사는 동네같은 느낌이라 거슬리진 않았어요. 몸만 좋았어도 벤치에 앉아 구경하고 싶을 정도였죠.
그날 제가 입은 옷이요? 그건 왜 묻죠? … 글쎄요. 기억 안 나는데요. 아까 말했잖아요. 그날 몸이 안 좋아서 사장 바로 앞에서 사장이 있는 것도 못 볼 정도였는데 그날 제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별 쓸데 없는 걸 왜 묻죠? 혹시 …. 어쨌거나 그날 전 일찍 퇴근했고, 집에 바로 들어 갔어요. 그건 출입기록이라도 열람하면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암튼, 아파트 입구를 지나 건물로 힘들게 걸어 가는데, 갑자기 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린 분명하게 들었어요. 제가 소리엔 유난히 예민하거든요. 비명 소리가 들린 것도 같고요. 비명은 누구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전, 그냥 시위꾼들이 홧김에 술병을 바닥에 던졌나 했죠. 비명이야 자기들끼리도 지를 수 있잖아요. 그때 제가 몸만 안 아팠어도, 그런 일이 안 생겼을 텐데 …. 원주민들 짓이 분명해요. 이 동네 원주민들 유명하잖아요.
특이사항: 그날 입은 복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음.
사건일지 7: 박씨. 입주자. 1-101 거주.
솔직히 말합시다. 전 지금까지 당신네들이 돈이라도 받은 줄 알았소. 아니 어떻게 만날 저렇게 시끄럽게 시위를 하는데 어떤 조치도 안 취할 수가 있냔 말이야. 내, 그래서 서장이랑 원주민 대표랑 그렇고 그런 사인가 했소. 뭘, 그렇게 놀라요? 아, 신참이구나. 경찰과 마을 유지 간의 밀착이야 유명하잖아. 이 동네면 더 심하겠지.
명예훼손? 무슨 명예훼손? 그럼 난 당신들 직무유기로 소송할 거야. 도대체 내가 진정을 몇 번이나 넣었는데 당신들 한 번이라도 신경 쓴 적 있어? 내가 사는 집 바로 앞에서 시위를, 그것도 그렇게 큰 소리로 하는데 당신 같으면 화가 안 나겠어? 당신 책상 앞에서 만날 고성이라도 질러 줄까? 난 이게 원주민들이 일으킨 사건이 아니라, 당신들의 직무유기와 나태가 만든 사건이라고 생각해. 내가 처음 진정서를 냈을 때 시위를 막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잖아. 참내.
암튼, 그날도 베란다에 나갔지. 문 닫으러 나가지, 뭐 하러 나가? 아이는 … 글쎄, 기억이 안 나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니, 아이가 있었겠지 않겠소? 설마 …. 암튼, 원주민들 시위는 그날도 유난했지. 근데 그날은 좀 더 요란했어. 심지어 새총으로 우리 집을 겨냥하고 있더라고요. 내, 진짜, 유리창만 깼어도 가만 안 있었어. 그냥, 그 길로 한바탕하려고 작정하고 있었지. 아, 진짜 다시 생각해도 열 받네.
특이사항: 욱하는 성격은 경비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고 함. 이사 당일에도 경비와 한 바탕 했다고 한 경비가 증언.
사건일지 8: 채씨. 원주민. 48-09 거주.
아이고, 이형사, 오랜 만이야. 부모님은 안녕하시고? …. 아, 뭐 그러지.
그날도 참가했지, 아마. 글쎄. 일단 얼굴은 내밀어야 해서 나가긴 했는데, 아마 뒤쪽에 있었을 거야. 내 나이도 있고 하니 앞에 나서기가 뭣하잖아. 그래서 잘은 모르겠어.
에이, 무슨.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앞에서 연설을 하겠어. 사람들이 착각한 걸거야. 아님 다른 날이랑 헷갈렸거나. 내, 한 번 앞에서 연설을 한 적이 있긴 해. 그래도 그날은 아냐. 아, 이 사람아, 진짜야.
애는 모르겠는데. 본 적 없어. 난 몰라. 그만해.
특이사항:
사건일지 9: 홍씨. 원주민. 48-21 거주.
글쎄 …. 아이는 잘 모르겠는데. 본 것 같기도 하고,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암튼, 그날 채 선생님이 멋드러지게 연설을 하고 계셔서 다른 덴 신경을 거의 안 썼지. …. 무슨 소리야, 그날 채 선생님이 분위기를 주도했는데. 이 선생님이랑 주도권으로 다툴 정도였다고. 알잖아. 둘이 사이가 안 좋은 거. 그날은 아예 주민들 앞에서 싸우더라고. 사실 싸우기 좋잖아. 시위자리니 시끄러워도 묻히기 쉽고.
소주병? 아냐. 나 아냐. 누가 그래! 나 요즘 술 끊었어. 이 선생님은 확실히 마셨고, 채 선생님은 잘 모르겠는데, 암튼 난 아냐. 안 마셨어. …. 무슨 소리야. 지문검사를 왜 해? 이거, 나 의심하는 거야? 니들은 위아래도 없냐? 응? 내가 니들 어릴 때부터 돌봐 줬는데, 이제 와서 이러기야?
나, 원, 해도 정도껏 해야지.
특이사항: 채씨(사건일지 8 참고)와 종일 같이 행동했다고 함. 시위 도중 사라졌다가 그날 저녁 늦게 집에 돌아 옴.
사건일지 10: 방씨. 아파트 경비원.
그날 출입구를 담당한 건 맞아요. 시위할 시간에 사람들이 몇 명 출입하긴 했어요. 다 입주자들이죠. 출입기록이 남을 테니, 확인할 수 있을 걸요.
카메라요? 아, 방범용 CCTV요? 그게 사람 안면인식 카메라라고요? 에이, 설마요.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다고 그 정도의 기술을 고작 이 아파트 단지에 도입하겠어요? 잘은 모르지만 아닐 거예요. 출입카드만으로도 충분한 데 그런 기술을 쓸데없이 왜 도입하겠어요. 들은 바도 없고요.
낯선 사람 출입은 없었어요. 이건 확실해요. 제가 사람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기억하거든요. 얼굴이랑 사는 집이랑 거의 다 외우고 있어요. 그래서 낯선 사람들은 없었어. 자리를 비운 적이 있냐고요? 자리를 비우려면 단지를 관리와 임시로 교대해야 하니, 입구 경비실에 사람이 비는 경우는 없죠. …. 아, 아니, 그게 …. 아니, 그 자식은 왜 쓸데 없이 그런 얘기를 ….
사실 전날 친구들을 만나 술을 좀 많이 마셨거든요. 그래서 속이 좀 안 좋아서 급하게 화장실을 간다고 잠시 비우긴 했어요. 교대를 기다리기엔 너무 급했거든요. 그래도 5분도 안 걸렸어요. 설마 그 사이에 누가 왔다 갔겠어요? 그 일이 생기려면 못 해도 10분은 걸릴 걸요? 문을 지나는 것 자체가 일인데다, 제가 화장실에 언제 갈 지 알고 기다리고 있겠어요. 설마 …, 그럴 리 없어요.
사건일지 11: 황보씨. 원주민. 49-11 거주.
당신들 뭐야! 이거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당신들 이러면 재미 없어. 진짜 곤란하다고.
감히 날 소환하겠다고? 진술은 무슨 진술이야. 소환해서 모든 일을 나한테 덮어 씌우겠다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내가 한두 번 당해? 내가 이 마을에 살지만, 이 동네 주민들 성격 자알~ 알아. 그 작자들, 특히 이씨랑 채씨들이 무슨 꿍꿍인지 알게 뭐야. 시커먼 속으로 또 이상한 짓을 했겠지. 뭐야, 그네들이 날 고발이라도 한 거야? 그 자식들이 일을 저지르고 내게 덮어 씌웠겠지. 한두 번 아니잖아.
내가 니들 말을 믿을 거 같아? 니들도 공범이잖아. 날 죽여서 시체를 데려갈 거 아니면, 난 못 가. 헛소리 하지 말라고.
특이사항: 집 입구에서 위의 얘기만 나눔. 동네 원주민들과 조화를 못 이루고 왕따로 지냄.
고양이: 『고양이 카페』, 루이스 웨인
요즘 저녁 알바를 하고 있어, 내가 몰랐던 책과 접하는 기회가 부쩍 늘었다. 이 말은 계획에 없던 책을 사는 일이 늘었다는 뜻이다. ㅡ_ㅡ;; 가급적 자제하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ㅠ_ㅠ
암튼, 어제 발견한 책은 레슬리 오마라의 『고양이 카페』. 저자는 고양이와 관련한 거의 모든 내용을 쓰고 있다지만, 고양이 예찬론에 가깝다. 고양이와 관련한 부정적인 내용은 ‘예의 상’ 조금 있을 뿐. 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샀고,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구성이 살짝 산만하달까, 지루하달까, 뭐 그렇다. 그래도 고양이 이야기니까. 무엇보다도 고양이 이미지가 많이 들어가 있어 좋다. 흐흐.
-메리 블라이
개와 고양이의 차이는 이렇다. 개는 ‘주인님은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사랑해줘. 주인님은 신이 틀림없어’라고 생각하는 반면, 고양이는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은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사랑해줘. 나는 신이 틀림없어’라고 생각한다.
-작자 미상.
흔히 고양이와 개를 비교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인상을 무척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는 구절인데, 읽으면서 키득거리며 웃었다. 모든 개가, 모든 고양이가 위의 구절과 같지는 않다. 인간이 고양이와 개를 소비하는 방식이 재밌달까.
사실 이 책은 또 다른 이유로 무척 반가웠다. 얼추 10년도 더 전, 한 백과사전에서 어느 화가가 고양이를 그린 그림을 접하곤 단박에 반했었다. 그림 이미지는 강렬했지만, 문제는 화가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 ㅡ_ㅡ;; 근데 이 책에 그 화가의 이름이 있었다. 바로, 루이스 웨인(Louise Wain). (참고: http://images.google.com/images?hl=en&q=louis+wain&um=1&ie=UTF-8&ei=hfsPSsT4LMWdkAXOzoGoBA&sa=X&oi=image_result_group&resnum=1&ct=title )
때때로 그의 그림은, 정신분열증이 진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쓰인다. 정신분열증을 앓기 전-초기-중기-말기 식으로 구분하고 그에 따라 그림도 구분하는 식이다. (참고: http://blog-imgs-12.fc2.com/d/o/d/dodonnchanchann/louiswain01.jpg )고백하자면, 난 그의 중후기 작품을 더 좋아한다. 중후기의 이미지에 혹했고, 여전히 그렇다.
( http://www.lilitu.com/catland 여기에 가면 그의 초기 작품이 있다.)
참, 아는 사람이 조만간에 고양이를 분양한다는데, 안타깝게도 함께 살 수가 없어 사양했다. 내년이면 몰라도 올해는 불가능하다. 언젠가 또 기회가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