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없는 주절주절

일을 마무리 짓고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장소는 학과 사무실. 켁. 학부 시험기간에도, 대학원 기말보고서를 쓸 때도, 심지어 학위논문을 쓸 때도 11시를 넘겨서까지 학교에 있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계는 새벽 1시. 아픈 눈을 부비며 玄牝으로 향했다. 그러나 오늘 있을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은 건 아니었다. 결국 오늘 회의 준비는 많은 실수와 부족함을 노출한 상태로 끝났다. 그래도 한숨을 돌린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

하지만 듣고 싶은 강의를 못 들어서 너무 속상했다. 일을 마무리 짓고 강의 들으러 가려는 바로 그 즈음 일이 늘어났다. 물론 상당히 큰 행사에 해당하는 회의를 앞두고 강좌를 들을 수 있다고 기대한 건 나의 어리석음이긴 하다. 그래도 속상했다. 공부 좀 하게 잠수라도 탈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_-;; 흐흐. 결국 좀 더 부지런해야 한다. 이 방법 외에 다른 수가 없다.

요즘 눈이 아프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불면증은 아니고 그냥 일시적인 현상이다. 눈이 따갑고 아픈데, 그리고 너무 졸린데 잠이 안 와 늦게까지 깨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말거란 건 안다. 근데 눈을 비비다가 찌르는 듯이 아픈 경우는 처음이라 잠깐 놀랐다. 뭐, 일주일 안에 없어 진다에 한 표.

이러나저러나 최근의 깨달음 하나. 난 쉴 팔자는 아닌가 보다. 이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별 수 없다. 그냥 내 팔자려니 하면서 살아야지.

돌아오는 길

01
잊을 만하면 연락이 오는 사람이 있다. 아니, 내가 잊으려고 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할 즈음, 알고 지낸 사람이란 사실 자체를 잊을 즈음, 이름마저 낯설 즈음 연락이 오는 사람. 그래서 연락이 오면 내가 자못 당황하는 사람. 마치 죽은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 것 같다. 이런 사람에게 답문자를 하기란 참 어렵다. 예전에 어떤 관계였는지 거의 다 잊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 이음새가 너무 헐거워 무난한 답만이 오가고, 무난한 연락 속에서 이음새는 더 삐걱거린다. 언제 잊어도, 언제 잊혀도 당혹스럽지 않은 관계. 친밀한 인사에도 어색함만 감돈다.
(20090125 메모)

02
폭풍의 전야처럼 서로 무난한 말만 주고받다가 기어이 속이 뒤집힌다. 속이 뒤집히는 관계, 적어도 내겐 이게 혈연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는 가족이다.

03
작년 가을 즈음 기존의 전자사전이 고장 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결국 새로 사기로 했다. 사고 나면 결국 영어사전 정도만 사용할 뿐 다른 기능을 사용하지 않지만, 다양한 제품들을 비교하다보면 이런저런 기능에 홀린다. “그래, 이런 기능이 있으면 좋을 거고, 저런 기능도 언젠간 사용할 거야…”라면서. 누구나 알지만, 언젠가 사용한다는 말은 결국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사전 본연의 기능에만 충실하면 된다. 그래서 SD 메모리 카드를 인식할 수 있고(MP3 플레이어 겸용으로 사용하려고;;), 사전 기능에 충실한 것으로 결정했다. 이제 자금만 모으면 된다. 후후. (뭔가 선후 관계가 바뀐 느낌. 흐흐. -_-;;)

수도관이 얼었지만

어제 밤, 玄牝에 돌아가 씻으려고 수도밸브를 돌렸다. 찬물은 잘 나왔다. 밤엔 찬 물로 씻으니 그러려니 하며 온수로 수도밸브를 돌렸다…. 이런! 물이 안 나왔다. 수도관이 얼었다. 이런, 이런.

수도관이 언 것이 몇 년 만의 일이냐. 예전에 살던 방은 겨울이면 수시로 수도관이 얼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는 건, 동파로 파손되진 않았단 것. 하지만 조금만 추워도 수도관이 얼었다. 그땐 찬물조차 안 나왔다. 그러길 몇 번 반복하자, 난 수도관이 어는 걸 막아준다는 기구를 샀었다. 별 효과가 없었던 거 같기도 하고, 효과가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하네. 하지만 현재 사는 곳에서 수도관이 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무리 추워도 수도관이 얼어서 물이 안 나온 적이 없다.

수도관만 언 것이 아니었다. 방은 얼음장이었다. 하얀 입김이 선명하게 보였다. 흐흐. 사실 난 아직까지 난방용 보일러를 안 틀고 살았다. 온수는 매일 사용하지만 보일러로 난방을 할 엄두가 안 나서 그냥 냉방에서 살았다. 전기장판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조금 따뜻한 방에서 살고자 난방용 보일러를 틀면, 기름값이 일주일에서 열흘 치 생활비 정도로 나왔다. 몇 년을 이러다가 결국 올 겨울엔 따뜻한 방을 포기했다. 어차피 아침 7시엔 玄牝에서 나오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玄牝에 돌아가니 큰 문제는 없었다. (자치방이 아니라 잠만 자는 방? 흐흐) 근데 이런 상황이, 수도관을 얼게 한 것 같았다. 별 수 있나? 보일러를 틀어 난방을 해야지. 아울러 수도밸브를 조금 열어뒀다. 그래야 얼지 않을 뿐 아니라, 언 수도관을 녹일 수 있으니까.

다행히 얼었던 수도관은 녹았고, 아침에 사용하는데 지장 없었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수도관 동파 사고가 많다는 소식이 남일 같지 않았다. 흐흐.

+
쓰기 전엔 웃겼는데, 쓰고 나서 다시 읽으니 지지리 궁상이다. 푸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