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책을 나르다가 집 근처 어느 골목에서 길고양이와 마주쳤다. 한쪽 끝에 고양이, 다른 쪽 끝에 나. 둘은 눈이 마주쳤고 안절부절 못 했다. 나는 조심스레 골목의 한쪽 벽으로 붙었다. 고양이는 내 움직임에 따라 다른 쪽 벽에 붙었다. 그리고 서로 눈을 마주보며 길을 지나갔다.

동반종과 관련한 소재를 다루는 어느 웹툰에서 읽은 내용: 길에서 고양이가, 강아지가 귀엽다고 다가가는 건, 그에게 일종의 위협일 수도 있다고, 예를 들어 당신보다 5배는 덩치 큰 사람이 당신이 귀엽다고 막무가내로 다가오면 어떤 기분이겠느냐고. 이런 내용을 읽은 이후, 길고양이에게 막무가내로 다가가는 일은 삼가고 있다. 멀리서 마주치면 다가가고 싶어 안절부절 못 하면서도 조심스레 피한다. 나 나름대로 ‘너에게 다가가지 않을 테니 안심해’라는 신호를 보내며.

다만 서로 다른 쪽 벽에 붙어 지나 간 건 재밌는 일이었다. 마치 이야기가 통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 아침엔 건물을 나서는데 건물 밖에 있던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길고양이는 경계했고, 나는 멈췄다. 그리고 최대한 느리게 움직였다. 길고양이가 경계를 풀면서도 나를 피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주기 위해서. 안타깝지만 잘 된 일이다.

4 thoughts on “길고양이

  1. 그런데 바퀴벌레보다 훨얼씬 더 큰 제가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건 무슨 조화일까요- 하지만 서로 벽에 붙어 지나간 건, 확실히 통한 느낌.

    1. 전 바퀴벌레보다 작은 벌레도 무서워서 기겁하는 걸요.. ㅠ_ㅠ 흐흐.
      그러고 보면 무서움은 크기와는 무관한 거 같아요.. 흐

  2. 맘 놓고 길고양이랑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네요. 사실 한국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면 고양이가 얼른 도망가주길 바라게 되더라구요. 인간을 믿어버리면 큰일이니까…

    1. 그러니까요. 고양이가 훌쩍 도망치면,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안심해요. 아직 반려종들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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