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과 샛별과 라디오

어제 초저녁. 부끄러운 표정의 초승달이 떴다. 그리고 그 옆에 샛별. 달과 수성이 어울린 저녁 하늘. 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 바람이 차가왔다. 손이 시렸다. 종종 걸음으로 갈 길을 재촉했다. 텅 빈 느낌의 학교. 나는 여전히 다른 날과 같은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라디오에선 손석희가 신년 특집을 방송하고 있었다. “2009년은 □다.”로 청취자들의 문자를 받았고, 그 내용을 소개했다. 누군가가 “2009년은 손석희다.”고 보냈다. 진지하지만 때로 웃음이 나는 방송처럼, 그런 한 해를 바라는 의미라고 문자를 보낸 사람은 부연했다. 손석희는 자신의 개그를 인정해주는 거냐며 좋아했다. 나는 깔깔, 웃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그는 진지함보단 개그에 승부를 거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유머가 썰렁하단 걸 안다.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그를 한다. 그리고 그의 개그 코드를 모르는 인터뷰참가자들은 당황한다. 가장 웃긴 건, 바로 이럴 때다. 농담과 개그라곤 절대 안 할 것 같은 사람이 농담이나 개그를 해서 상대방이 당황하는 찰나에 생기는 공백. 박장대소할 만한 웃음도 좋지만, 나는 이런 공백에서 발생하는 개그가 좋다.

라디오가 아니었다면, 오늘은 휴일이거나 일요일이라 착각했을 거 같다. 내가 머무는 공간엔 달력이 없어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 도착하면 그제야 깨닫는다. 오늘이 평일인지, 휴일인지를. 내게 요일은 평일과 휴일이란 구분만이 의미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내 생활은 그러거나 말거나 별다른 변화가 없다. 나의 삶은 언제나 단절과 이음 속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이어나간다.

이 추운 날에도 밖에서 밤 샌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주 짧은 문장으로만 이들을 기록한다. 오늘 저녁에도 나는 초승달을 바라볼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한 동안은 쉴 예정이니까. 힘든 적은 없지만, 그냥 이것저것 정리하고 싶은 게 많다. 간사를 맡은 일이 있어 자꾸만 움직여야 하지만, 그래도 한 동안은 멍하니 지내련다.

근황

1.
이제는 즐겁게 자학을 할 시간!
한없는 부끄러움에 변명도 필요 없다.
그저 즐거운 자학의 나날.
부끄러움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위해, 너무 오랫동안 알면서도 외면했던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써야 하는 시간.

즐겁고 유쾌하게.

2
마음이 가는 길을 몸이 차마 못 따라가고 발만 동동거린다.
몸이 머무는 곳에 마음은 없고, 마음이 향하는 곳에 몸은 없다.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곳에 머물고 그렇게 이별을 준비한다.

몸의 질곡 : 몸을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은 몸 곁에 머문다.
마음을 따라가지 않는 몸과 몸의 질곡에 붙잡힌 마음.
가는 모든 곳이 길인데, 족쇄는 완강하다.

지겹고도 지겨운데 벗어나지 못 하고, 징징거리기만 할 뿐이다.

3
안녕.

눈길

어제 늦은 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조용히. 조용히. 모든 가벼운 것들은 차갑다는 걸 알려주는 것처럼, 그렇게. 우산을 꺼냈지만 쓰는 시늉만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맞았다. 기분이 좋았다. 차갑게, 차갑게. 나도 차갑게 식어가길 바랐다.

또 잠을 설쳤다. 잠들었다 깨길 반복했다. 꿈이 아니란 걸 확신한 건, 중간에 핸드폰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새벽 4시. 시간을 확인하기 전에도 몇 번인가 잠들고 깨길 반복했다. 어쩌면 잠들기 전에 먹은 약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러니 약을 끊으면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약을 먹으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훨씬 수월하다. 아이러니. 잠을 설치면서도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다는 역설. 그런데, 시계를 본 것이 꿈이라면 어쩌지…. 지금 이 순간도 꿈이라면 어쩌지…. 아니, 지금이 꿈이 아니면 어쩌지….

늦은 새벽 혹은 이른 아침. 길을 걸으며, 몽환, 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길고양이도, 사람도 지나간 흔적이 거의 없는 눈 덮인 거리. 그저 바람이 지나간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있는 거리.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거리는 짙푸른 색이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더듬었다. 어제보다 앙상한 초승달이 나뭇가지에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쪽에선 필라멘트가 발열하는 빛이 번지고 있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졌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그 순간, 내 몸이 하얀 가루로 흩날려 쌓인 눈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꿈같은 상황이었지만, 꿈은 아니었다. 길에서 미끄러질까봐 조심스럽게 걸었고 발가락은 얼어가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현실감을 잃어가고 있다.

그 거리를, 키쓰 자렛(Keith Jarret)의 [The Koln Concert]를 들으며 걸었다. 서늘한 거리와 서늘한 피아노 소리. 서늘함이 닮았다. 내게 존재하는 건 음악소리 뿐이었다. 음악소리만이 유일한 현실이(었)다.

… 논문이라도 쓰고 있어서 다행이야,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