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영화, 뮤즈, 신이 지나간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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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영화관에 가고 싶은데 못 가고 있다. 바쁜데, 이 바쁨을 무시하고 갈 수도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는 상황. 영화관에 가서 영화 읽고 싶어~~~!!!

루인이 주로 가는 영화관에서 그나마 읽고 싶다고 느끼는 영화는 … [아들]뿐이다. ;;; 별자리만 아니었으면 관심도 없었을 차승원-_-;;; (이러다 정말 루인의 이미지는 별자리로 모든 걸 풀어가는 블로거로 찍히는 건가… 켁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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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포트 1차 라인업이 떴다. 뮤즈 온다!
올 봄에 이어 여름에도 뮤즈닷!
우헤헤헤헤헤헤
뮤즈공식홈피에 가면 메인으로 나와 있다.
펜타포트에 가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음.

낮에, 12시 즈음이었나, ㅁㄴ가 말해줘서 알았지만, 키드님 블로그에서 확인하며, 어찌나 기쁘던지. 시간이 없어도 갈 거고, 돈이 없어도 갈 거야. 뮤즈를 기다리는 힘으로, 뮤즈를 만날 거란 기대를 품는 힘으로 견딜 거니까. 그리하여 뮤즈를 만나면, 그 힘으로 그 이후를 견딜 수 있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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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2주 전 일요일, 문득 한 분의 신이 지나갔다. 얼추 3일 전 또 다른 한 분의 신이 지나갔고 이틀 전에도 한 분의 신이 지나갔다. -_-;;; 그리고 어제 그 신들이 지나간 흔적이 한꺼번에 도착했다. 케케.

책을 몇 권 샀고(근데 언제 읽어? -_-;;;) 우산을 몇 개 샀고(낄낄, 작년부터 사야지 하고 벼루고 있다고 지난 번, 우산이 부러졌고, 그러고도 미루고 있다가 잊었는데, ㅅㅎ의 말에 떠올라서 샀다) DVD를 샀다. DVD는 이번에 출시한 [미녀는 괴로워]. 후후. OST가 들어가 있는 한정반으로. 정말이지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호불호가 상당히 많이 갈린 영화지만, 적어도 루인에겐 소중한 영화고, 그래서 DVD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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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얘기를 나누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

언젠가: 나무

언젠간 이 멍청함에 짓눌려서 짜부라지고 말거야. 반추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재수 없는 인간인지 너무도 잘 알게 돼.

아침마다 학교 오는 길, 학교 안에서 만나는 그 나무들과 인사할 때마다, 오래 전에 읽은 [이웃집 토토로]가 떠올라. 몇 해 전, 이래저래 치이고 결국 어느 골목 한 곳에서 주저앉으려 했던 때였어. 그저 시간을 견디겠다며, 학교 영상실로 가서 [이웃집 토토로]를 빌렸어. 왜 선택했는지는 지금으로서야 이해할 수 없지만(그땐 영화를 거의 안 봤을 뿐 아니라 애니는 더더욱 안 봤는데) 아무려나, 그렇게 그 애니를 보다가…. 이 애니를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사 간 집에 있는 커다란 나무와 관련한 얘기.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라고 했던가. 그 한 마디. 전체적인 흐름과는 아무 상관없을 수도 있는 그 한 마디.

그 시절엔 “나무”란 별칭을 사용하고 있었어. 그 시절이 지나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지만(그래서 나무님을 만났을 땐 별칭만으로도 반가웠어). 나무, 오랜 세월을 살아온 혹은 견딘 나무. 그 한 마디가 그 동안 겪고 있던 모든 감정들을 보듬어 주고 위로해 주는 느낌이었어. 그 이후, 이 애니는 루인에게 각별한 느낌으로 남아 있어. (반드시 이런 이유로 루인의 필통이 고양이버스인 건 아니지만… 흐흐)

별칭은 바뀌었지만, 그때도 지금도 바뀌지 않고 있는 바람 하나. 사후 세계까지는 아니어도 윤회는 믿는 편이야. 그래서 인연이란 말도 믿는 편이고. 그리고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있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어. 그래서 최근 ㅅㅇ님이 알려준 “나무를 심는 사람”을 보면서도 나무에 이입했는지도 몰라(고마워요!). 나무. 나무.

만약 죽어, 화장가루를 나무 아래 뿌린다면, 나무가 될 수 있을까? 혹은 화장가루를 땅에 파묻고 그 위에 나무를 심는다면 나무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건 서로를 죽이는 일이지. 화장가루가 얼마나 안 좋은데.

아침마다 나무들에게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해. 그때에야 비로소 하루를 시작하지. 매일 조금씩 변하는 나무를 느끼며, 변화란 건 매순간 눈치 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닫는 거란 걸 배우고 있어. 묵묵히 세월을 견디면서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 달라진 모습을 만나겠지.

그러면서도… 예전엔 자학과 자뻑의 무한반복이었는데(자학이나 자뻑이나 결국 같은 거긴 하지만) 요즘은 자학의 무한변주 속에서 살고 있어. 결국 이런 변주가 이 상황을 견디는 힘이란 걸 배우고 있지. 이런 변주를 사랑하고. 그런데, 어쩌나, 오늘이 왔어. 벌써 오늘이야. 몇 해 동안, 오늘은 글을 쓰지 않으며 기억했지만, 이젠 글을 쓰며 기억하려고 해. 글을 쓰건 쓰지 않건 마찬가지야. 어떤 형식으로 기억하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 어떤 형태로건 기록하고 있는 걸.

아무려나, 이젠….

블로그

어제 밤, 전화 통화를 한 이가 루인에게, 자기가 죽어도 모르겠다며, 루인의 연락 없음을 타박했다. 전화상으론 미안하다고 했지만 속으로 중얼거린 말 두 가지: 루인만 연락 안 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연락을 안 한 거잖아(항상 억울해ㅠ_ㅠ); 근데 4월 초에 만난 적 있지 않나? (루인의 입장에선 두어 달 연락 안 하고 지내는 것도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라;;)

아무려나, 그 사람과의 통화를 끊고 나서, 문득, 어느 날 루인이 갑자기 죽는다면… 이란 가정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핸드폰도 분실하거나 부서진다면….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서 안타까운 건, 다름 아니라 블로그임을 깨달았다(오프라인만으로 만나는 사람은 드물고, 적지 않게 온라인으로도 만나고 있으니까).

만약 부산에 내려가 있는 와중에 사고가 나고 그 과정에서 핸드폰도 부서진다면 어떻게 될까? 부모님을 비롯한 혈연가족들의 경우, 루인의 친구들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루인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소식이 닿지 않겠구나, 하는 상념들. 그렇다면 루인이 활동하고 있는 지렁이나 위그 사람들은, 부모님들 혹은 혈연가족과 친족들에게 부재하겠구나, 하는 상념들. 그렇다면 루인은 소리 소문 없지 조용히 사라지는 걸까?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Run To 루인]은 어떻게 될까? 어느 날, 결제일이 지나고 보름 정도가 더 지나면 이곳도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란 표시와 함께 사라질까? 열심히 글을 쓰던 어느 블로거가 어느 날 갑자기 잠수모드를 취하더니 그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곳처럼(루인의 첫 번째 블로그도 그러했고) 그렇게 사라질까? 그렇게 [Run To 루인]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끝나는 걸까? 포탈사이트나 블로그 서비스 업체에서 제공하는 블로그가 아니라 루인이 계정을 사서 운영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상념들이 떠올랐다. 정말 [Run To 루인]은 어떻게 될까?

그런데 만약 핸드폰이 남겨져 있다면, 또 어떻게 될까? 핸드폰에 저장한 번호로 행여 연락을 하다가 “루인”이란 이름을 알게 되겠지? 그러면서 루인이 어떤 활동을 하고 다녔는지 안다면, 어떤 기분이 드실까? 죽음과 “커밍아웃”을 동시에 경험하는 셈인가?

뭐, 이런 상상을 하지만, 결국 루인은 징 하게 오래 살 거란 걸 안다.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만난 사람들 모두의 죽음을 볼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세월에도 다들 블로그를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