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였나, 아마 그 즈음의 시간이었을 거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시간, 중얼거렸다. 죽을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을 거야, 라고. 그 이유는 다 잊었지만 혹은 다 잊은 척 하고 있지만, 그 다짐 만은 남아 있다. 그때 “연애”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가. 그때 벌써 루인의 섹슈얼리티를 깨달았던가.
그 다짐이 어쩌면 우울증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우울증을 통해 당신과 연애를 시작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도. 그 나이에 무슨 고민을 했을까,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 어느 날의 그 순간 만큼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날, 버스의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다짐 했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거라고. 그 다짐 만이 그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고 그 다짐을 지키는 것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그건 트라우마가 아니라 통합과정이었다. 하지만 왜 독신(가족)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을까. 그런데 루인이 ‘독신’이긴 할까?
봄이 오고 있다. 고양이 털에서 반짝이는 햇살같은 느낌으로, 깨진 유리병 조각의 끝에서 빛나는 햇살에 눈이 찔리는 느낌으로.
조교 업무로 햇살을 받으며 돌아다니다가, 문득 라이너스가 떠올랐다. 예전에 알던 어떤 사람들은 루인이 라이너스 이미지라고 얘기 했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대답했다. 루인은 아기 때 사용하던 담요를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라고. 물론 그 담요를 기념하겠다고 엄마님이 보관한 건 아니고 다리미질 할 때 바닥에 깔아 두기 좋아서 사용하던 걸, 루인이 챙겨서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겨울이면 玄牝에서 무릎담요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담요에 처음부터 어떤 애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니 그 담요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라이너스를 만나고 나서야 혹시나 담요가 있는지 물었고, 다리미질 할 때 사용하는 담요가 그 담요임을 알고 챙겼고, 어느 새 애정이 생겼고 그 이후로 루인과 떨어진 적이 없다. 사물에 애정을 많이 주는 편이라, 엄마님과 약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때까지 버려지지 않고 지닐 수 있었고, 그 이후론 자취생활이었기에 루인과 지내고 있다.
종일 기분이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 하다. 종잡을 수 없이 움직는 감정들. [더 퀸]에 보면, 다이아나가 죽자 여왕이 일기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신경안정제를 줄까 하고 묻는 남편에게 일기를 길게 쓰면 된다는 말과 함께.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불안하거나 종잡을 수 없을 땐, 자꾸 뭐라도 쓴다. 그러다보면 뭔가 안정도 되고, 하니까.
그래도 12시가 안 된 시간 즈음엔 정말로 기쁜 일도 있었다. 요동치는 감정 속에서도 고마운 선물을 바라보며 웃음 지을 수 있었어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