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玄牝으로 돌아오니, 노란색 종이가 붙어있었다. 등기가 왔는데 사람이 없어 돌아갔다는 우체국 스티커. 아아, 어지간해선 이런 스티커가 있어도 연락하지 않는 루인이지만, 쪽지를 읽자마자 전화를 했다. …아저씨~!!! 월요일 오후 한 시 즈음 다시 올 예정이라는 말에 경악. 그 시간에 玄牝에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서 그냥 문 옆에 있는 장소(루인이 없을 때, 택배를 받을 수 있는 장소가 玄牝입구에 있다)에 넣어 달라니까, 등기라서 안 된다고 해서 그럼 학교로 보내달라고 하니, 루인이랑 루인의 실명이랑 같은 사람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둥, 짜증나는 소리를 했지만, 그런 말에 성질 낼 상황이 아니었다(소심해서 짜증도 못 내지만;;). 어떻게 어르고 달래서 그 장소에 넣어 두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
사무실에서 또 한 편의 소논문을 쓰고 돌아와서, 그 장소의 문을 열었다. 종이봉투 하나. 애드키드님의 이름과 주소.
설레임과 고마움과 기쁨과 미안함과…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들이 몸을 타고 돌았다. 서둘러 봉투를 열고 싶음과 천천히 열고 싶음과 무엇일까를 기대하는 설렘으로 영원히 열고 싶지 않음과… 이런 감정들이 교차했다. 빨리 확인하고 싶음과 천천히 확인하고 싶음의 교차. 조심스레 종이를 뜯고 내용물을 확인하고, 아아.
고마워요. 죄송해요. 행복해요. 기쁜데 괜히 주소를 적었나 싶기도 해요. 잘 적었나 싶기도 한데 너무 좋아서 괜히 주소를 적었나 싶기도 해요.
정말이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물을 확인하며, 기뻐하고 있어요. 꼭 한 번은 듣고 싶은 음악들이거든요. 소중한 치유와 쾌락이 될 거란 기대를 품고 있어요. 고마워요.
사실, 이런 선물/행복이 있을 거란 기대를 조금도 안 했기에, 애드키드님의 리플을 읽었을 때 복잡한 감정을 느꼈어요.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기에 이럴 땐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할지 몰라 낯설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주소를 슬쩍 숨길걸 그랬나 하는 감정과 그래도 잘 적었다는 감정이 교차했어요. 고마운 선물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렇게 관계를 엮어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생겼다는 즐거움 때문이에요.
인터넷이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별로 없는 루인으로선 (블로그 [Run To 루인]은 루인의 확장이라 분리해서 말할 수가 없거든요) 블로그를 통한 만남도 오프라인의 만남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느껴요. 오프라인 만남이 있어야 더 오래간다는 말은 온라인 모임을 “폄하”하는 발언이라기보다는 오프라인 만남을 신비화하는 발언이죠. 별로 안 친하면서 아는 척 하는 관계들, 오프라인에서도 많잖아요.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 좋은 글(블로그는 글이 그 사람의 ‘외모’라고 느껴요, 글을 통해서만 접하니까요)을 접한다는 건 큰 기쁨이죠. 비록 애드키드님이 먼저 찾아주셨지만, 그렇게 만난 이후엔 루인에게도 소중하니까요.
사실, 이건 비밀인데요, 블로그(뿐 아니라 다른 곳일 때도)에 글을 쓸 때마다 애드키드님을 떠올려요. 루인도 잘 모르는 내용을 쓰는 건 아닌지, 더 “쉽게” 쓸 수도 있는데 “어렵게” 쓰는 건 아닌지, 등등 일종의 긍정적인 ‘검열’로서요. 헤헤. ^^ 이런 의미에서도 늘 고마워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