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합의의 시차

수업 시간에 잠깐 언급한 내용인데…

폭력은 무엇이고, 동의나 합의는 언제 시작해서 언제 종식되는 것일까를 질문했다. 폭력이 무엇인가도 어려운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동의나 합의는 언제 시작해서 언제 종식되는 것일까를 둘러싼 고민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유성애자여서 성적 관계를 맺기로 한 합의는 언제까지 유효한 것일까? 그 합의는 유효한 것일까? 20년 정도 전에 성폭력의 사후 구성과 관련한 논문이 나왔는데, 그 논문의 주요 쟁점은 성폭력 발생의 시차였다. 연애 관계일 당시에는 합의라고 생각했는데,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고민해보니 그것은 합의라기보다 강요였고, 강압은 아니라고 해도 마지 못해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논문의 중요한 통찰은, 성폭력은 자명한 사건이 아니라 사후 해석과 시차가 발생하는 사건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시차의 발생은 동의와 합의 개념의 시작에서 종식까지의 시간성을 고민하도록 한다. 어떤 사건이나 행위에 대해,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서약하면 동의나 합의는 완결되는 것일까? 아니면 동의나 합의는 계속해서 지연되고 종식될 수 없는 속성인 것일까? 종식될 수 없는 동의나 합의라면 어디서 폭력이 발생하고 어디서 친밀감이 구축되는 것일까?

뭐 이런 식의 질문을 했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 나 역시 충분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동의나 합의에서 시간적 완결성을 만드는 작업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과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니 최근 발생한 정치권의 ‘사건’이 떠오르는데, 복잡한 논의 지형을 소란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화가 난다. 나는 화가 나지만, 반성폭력 운동과 동의/합의를 둘러싼 논의를 오래 고민한 이들은 얼마나 속이 터질까 싶다.

토론은 어렵다

토론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근래 토론을 할 기회가 좀 더 많아지면서 더더욱 토론을 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수업을 하는 첫째 날이면 이런저런 가이드를 하는데 그 중 하나는 텍스트를 읽는 방법이다. 나의 가장 중요한 원칙: 각 텍스트의 한계를 다루지 말 것. 그러니까 이 텍스트에는 저런 논의가 빠져 있고 저 텍스트에는 이런 논의가 빠져 있다는 식으로 읽지 말라고 요청한다. 이런 태도로 쪽글을 쓰고 수업에서 토론할 것을 요청한다. 이유는 간단한데 모든 텍스트는 한계를 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주제와 소재를 다루는 완벽한 텍스트는 없고 빠지는 내용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텍스트는 각자의 목표와 기획이 있고 그래서 그 한계 내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그렇기에 빠진 내용은 무궁무진하고 빠진 부분에 집중하면 텍스트에서 배울 것은 없다. 그러니 한계 내에서도 배울 수 있은 측면에 초점을 맞춰서 텍스트를 읽어주기를 요청하고 매번 이 지점에 집중한다. 학위 논문을 쓸 때면 한계를 적어야 하지만 그건 그때고 일단은 배울 수 있는 부분을 배우고 한계 내에서도 가능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나는 토론을 준비할 때도 정확하게 이 지점을 중시해야 한다고 믿는다. 논문이나 발표문에서 연구자의 욕망과 기획의도를 찾고, 해당 논문의 한계나 제약 속에서 어떻게 연구자의 욕망과 기획을 더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찾는 것. 연구자의 욕망과 기획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논문이 설정한 한계를 초과하지 않고 가급적 그 한계를 존중해줄 것. 이것이 토론의 역할이지 않나 싶은데 사실 나도 잘 하는 편은 아니라, 토론을 할 때마다 걱정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오랜 연구 고민을 살리지는 못할 지라도 망치지는 않는 것. 이것이 토론의 역할이라고 배웠는데 그게 또 쉬운 일은 아니라 매번 부담스럽고 발표자/연구자에게 괜히 미안하고 그렇다.

글 주소의 문제

워드프레스로 옮기고 데이터를 백업한 뒤 생긴 불편은 몇 가지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새로운 시스템이 적응하는 부분이다. 진짜 문제는 주소다. 태터툴즈-텍스트큐브 시절에 글마다 부여된 주소가 있었는데 그 모든 주소가 워드프레스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 바뀌었다. 이것은 좀 치명적이다. 또한 새 글의 주소 역시 숫자로 생성하고 있는에 그 번호가 무작위다… 😱

대충 찾아봐서는 이걸 고칠 방법이 없는 듯한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