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라는 시간

주말마다 부산에 갔다 오고 있습니다. 이번엔 월요일에 처리할 일이 있어 오늘 돌아왔지만요…

기차를 타고, 다시 지하철,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1km를 더 걸어야 재를 지내는 절에 갈 수 있습니다. 산길을 걸으며, 고인에겐 이렇게 할 수 있는 데 살아 있을 땐 왜 이렇게 못 했을까,란 고민을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인을 향한 애도와 예의는 챙기면서 생전엔 왜 이렇게 못 한 것일까요? 전 얼마나 많은 미래를 기대한 것일까요? 어떤 시간을 기대한 것일까요?
부산에 가기 전, 요즘 제 몸 한 켠을 내주고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떤 질문에 “다음에”라고 답을 미뤘습니다. 질문을 받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란 시간은 과연 존재할까요? 예전부터 미래 시간을 믿지 않았지만 최근 일을 겪고 난 뒤로 미래 시간을 더욱더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왜 “다음에”라는 미래 시간을 기약한 것일까요?
관계를 예측할 수 없는 미래까지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의 표현일까요? 혹은 이 대답을 할 때까지는, 그 이상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대답을 할 시간까지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한 것일까요? 혹은 현재를 유예하는 것일까요? 현재 시간을 늘이고 또 늘여서 더 길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일까요?
“다음에”라는 시간은 어떤 욕망 혹은 바람을 내포한 대답일까요? 미래라는 시간은 참 의미가 없는데 말이죠. 전 얼마나 더 많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까요? 그저 현재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달리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말이죠.
“다음에”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금 슬펐고, 미안했습니다.

부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곳에 기록을 남겨야 하는지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이 저의 흔적을 남기는 곳이라는 믿음, 저 자신을 아카이빙하는 곳이라는 믿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난 주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정황은 다음 기사를 참고해주세요.
갑작스런 사고였고, 장례식을 치르고 삼오에 초재를 지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선 이런저런 이유로 블로그에 글을 남기지 못 했습니다. 이메일로만 몇 분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고요.
장례식을 겪은 후 많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풀어가야 할 많은 이슈들이 제 몸에 박혔고요.
사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사고가 정말 일어난 것인지, 제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때론 몸이 너무 무겁고 몸 한 곳에 뜨거운 무언가가 저를 짖누르기도 하고 때론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살고 있기도 합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시간이 좀 더 지나야 뭔가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다 어느 순간, 툭 쓰러지기도 하겠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손 잡아 줄 사람이 있으니까요. 억지로 무언가를 애도하지 않고, 또 억지로 정신을 차리지도 않으려고요. 그냥 시간이 흐르면 알 수 있겠지요.
+
그나저나… 수업을 듣는 선생님에겐 소식을 알렸고 그래서 소문이 좀 났고, 고맙게도 몇 분이 장례식장에 찾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찾아준 분의 공통된 발언… “어머니는 정말 미인이고 아버지도 잘 생기셨는데…” 힝!

한숨 돌리다, 초벌원고를 꺼내다

01

하루 종일 원고를 썼다. 대략 11시간 정도 자리에 앉아 계속 썼다. 그리하여 구글독스 기준 10장, PDF 다운로드 파일 기준 13장(참고문헌 포함) 정도다.
물론 초고다. 완전 초고. 대대적 수정을 가해야 하는 상태다. 모든 글쓰기는 초벌원고가 나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그러니 나도 이제 시작이다. 그래도 백지를 마주하는 부담과 뭐라도 만든 것을 마주하는 부담은 전혀 다르니까. 한숨 돌린 기분이긴 하다. (하지만 퇴고하려고 읽는데, 차라리 백지가 낫다면 어떡하지… ;ㅅ; )
원고 마감은 20일. 애초 초벌을 11일에 쓸 계획이었다. 실제 글을 썼다. 펜으로 열심히 썼지만 펜으로 글쓰기가 문제를 일으켜 5시간 만에 포기했다. 다섯 시간 동안 글만 썼는데 2/3쪽 정도 분량을 완성했달까… ;;; 펜으로 글쓰기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더 큰 문제는 원고 구성의 문제였다. 다른 어떤 글보다 더 신경 써서 준비하다보니 구성 자체를 특별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구성을 상상했고 이런저런 실험적 형태를 모색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내용을 쓸 수가 없더라. 그래서 가장 평범한 형태를 선택했다.
하루에 A4 13장 분량을 썼다면 많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애당초 목차와 세부 내용. 인용문 배치, 할 얘기도 거의 다 정리한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지.
사실 욕심은 22일이나 23일에 원고를 넘기는 것. 그 전에 사람들에게 논평을 좀 받고 싶어서. 하지만 그랬다간 다른 일정이 다 꼬일 듯하여 그냥 참으려고. 아울러 마감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까.
내가 글의 질은 보장 못 해도 마감은 최대한 지키잖아… 후후. ;;;
(물론 어긴 적도 몇 번 있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어긴 것이지만;; )
02
지인에게 보여주려고 혹은 자랑하려고 오랜 만에 석사논문의 초벌원고를 꺼냈다. 지도교수에게 제출하고 논평을 받은 원고다. 선생님은 모든 문장에 논평을 해줬고 나는 그에 따라 열심히 고쳤다.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아련한 기억처럼 남아 있었는데 다시 확인하니 선생님에게 너무 고맙고 또 내가 이렇게 배웠다는 사실이 기뻤다. 물론 선생님의 가르침에 못 미치는 학생이라는 게 에러지만. 흐흐. ;;;
대충 보여주면 다음과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의 모든 페이지가 이런 상태다. 특별히 체크가 많은 페이지를 찍은 것이 아니라 그냥 대충 아무 페이지를 펼쳐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내 글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인 동시에 선생님이 얼마나 공들이고 또 열심히 지도해주셨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다. 고마울 뿐이다.
03
어떤 일정을 조율하는데 정신 없이 바쁜 시기가 겹친다는 걸 발견했다. 바로 지금이다. 원고마감, 혹은 보고서 마감 등으로 다들 바빠 일정 연기에 기다렸다는 듯 답장을 한다. 참고로 일정 연기를 제안하는 메일에 1등으로 답장을 한 사람은 바로 나! 후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