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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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다이어리가 도착했다. 일전에 나무님이 예쁘다고 하셔서 기대를 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디카 없음이 처음으로 아쉬울 정도로 멋지고 예쁘다. 아아아, 좋아좋아좋아. 얄미운 소리로, 배송료 절약 차원에서 공동구매로 샀는데, 같이 사기로 한 다른 이들에게 주지 않고 혼자 다 가지고 싶을 정도랄까^0^;;;

이제 두 개의 다이어리를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하느냐, 그것이 문제구나. 이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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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아마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할 것 같다. 그래봐야 총액은 얼마 안 된다. 하나는 길어야 6개월 정도 계약이다. 아직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성사 단계랄까. 거의 재택근무-_-;;기에 시간에 비해선 금액이 높다고 해야겠지. 다른 하나는 액수도 적지만 6달 일하면 5달치 알바비가 나온다. 조교일이다;; 마지막 하나는 액수에 따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금액이 맞으면 할 예정인데, 신경 쓸 일은 많아도 소요 시간은 조교일과 많이 겹치기에 부담이 덜 하다는 점에서 끌린다. 금액이 맞으면 할 예정인데, 조건은 최소한이다. 이 일로 인해 들어갈 핸드폰 요금은 지불할 수 있을 만큼!

클래식으로 바꾼 후..

많은 분들이 지적했던, 트랙백과 rss의 문제를 직접 확인했다.

[#M_ 요렇게.. | ㅠ_ㅠ.. |
_M#]

아쉬운 점이 있다면, 리퍼러 로그를 통해 검색엔진에서 어떤 검색어로 들어오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_-;; 로그인해서 이거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Mozilla/4.0이니 하는 글자만 뜬다.

#깨진 글씨가 살짝 괴기스럽게 다가온다.-_-;;

[왕의 남자] ([황산벌]과 함께): 권력과 이성애적 ‘동성애’

부끄럽게도, 파일 공유가 가능할 때 까지 기다려서야 원하는 영화를 접하는 루인으로서는 드물게, 개봉한지 며칠 되지도 않은 [왕의 남자]를 접했다. 아침 9시 상영을 선택할까 했지만, 어제가 일요일인지라 내일 [청연]을 9시로 계획하고, 느긋하게 준비해서 오전 11시 35분을 선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간, 중간 찔끔찔끔 울다가 마지막엔 훌쩍거리며 울었다.

※당연히 스포일러 많아요!!!
[왕의 남자] 감독이 [황산벌] 감독이라고 해서 여러 날 전에 [황산벌]을 먼저 접했었다.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이지만 흥미로운 영화라는 게 현재 남아있는 느낌이다. [#M_ 황산벌 계속 읽기.. | 황산벌은 접기.. | 흥미로운 점은, 알다시피 언어와 소통의 문제. 단일민족이란 환상을 가뿐하게 날려버리고 한국어란 환상도 깬다. “신라 말 정말 어렵다”는 대사나 “거시기” 뭔지 몰라 모든 한자를 다 조합하면서 해독하려고 하고, “거시기”를 알 때까지 공격 하지 못하는 상황은 코미디가 아니라 현실이다. 비서울지역 언어의 다름 때문에 생기는 오해와 “희화화”는 너무도 많다. 경상도 “사투리”의 억샌 말투로 인해 시비 거는 느낌이라고 말하거나 서울 “사투리”를 사용하는 ‘남자’를 “사내자식이 말투가 그게 뭐냐”며 재수 없게 여기는 반응은 루인에게 익숙하다. 오래전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선 “가가가가가”(그 아이의 성이 가씨냐)란 말을 하며 사람들을 웃겼다. 전라도 사투리는 언제나 조폭의 언어로 등장하고 [웰컴 투 동막골]을 통해 강원도 “사투리”는 2005년의 유행이 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내 편이란 공감대를 형성함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표준어”라는 말도 안 되는 기준을 만들고 그런 기준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말살하는 것이 근대국민 만들기임을 폭로한다.

[황산벌]을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느낀 건, 이 영화가 전쟁영화라서가 아니다. 전쟁 영화라도 성찰적이고 윤리적일 수 있다. (비록 전투 장면은 없지만 [용서 받지 못한 자]는 이런 성찰성과 윤리를 잘 드러낸다.) 루인은 성폭력으로 받아들였기에 차마 쓰고 싶지 않은 한 장면에선 싸움을 성애화한다. 이 영화가 비윤리적이란 감정으로 남게 했던 또 다른 장면은 김유신이 계백과 장기를 두는 장면. 공터에 장기판의 좌표를 그리고 실제 사람들을 세워둔다. 김유신과 계백이 상에 앉아 장기를 두는데 그들이 말을 움직이면 마당에 서 있는 사람들도 같이 움직이고 말을 잡으면 마당의 사람 또한 이동하면서 상대를 정말 죽인다. 바로 이 장면. 장기 놀이를 통해 실제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장면은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게임에 중독 되어 실제 상황에서도 총기 난사로 몇 십 명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는 “해외토픽”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_M#]

이런 이유로 [왕의 남자]에 대한 기대는 복잡했다. 개봉하기 전부터 동성애와 관련 있단 입소문이 자자했고 감독은 권력에 관한 영화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전작을 확인하고 싶어서 접했고, 그로 인해 동성애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가졌던 기대는 얼마간의 불안으로 바뀌었다. 그 와중에 김태웅의 희곡집 [이爾]를 읽었다.

먼저, 녹수. 영화에서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녹수와 접하며, 이 영화는 ‘이성애’가 개입한 4각 관계 영화가 아니라 ‘동성애’ 3각 관계구나 했다-_-;; 녹수의 연산을 향한 “애정”은 연산을 향한 것이 아니라 연산으로 나타나는 권력을 향한 애정이다. 당시의 유교, 신분제, 젠더차별, 성차별 등등의 각종 억압이 난무한 상황에서 권력욕을 가진 녹수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연산에게 “간택”되어 아이를 가지는 것. 그렇기에 녹수는 요부가 아니라 협상력을 가진 인물이다(이런 의미에서 [신돈]의 기황후 만큼이나 멋지다). 녹수가 공길에게 누명을 씌우고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연산의 사랑이 공길에게로 이동해서가 아니라 그로 인해 자신의 권력 기반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으로 읽었다.

공길, 장생, 연산 이렇게 셋의 관계를 적는 건 너무 진부할 것 같다. 실은 진부해서가 아니라 한 번은 더 접해야만 쓸 수 있을 것 같다. 일테면 연산의 권력을 가지고 싶음과 권력에서 벗어나고 싶음의 욕망은 편견으로서의 SM을 떠올리게 한다(그러니까 머리 벗겨지고 배나온 회장님, 정치인들이 마조히즘적 쾌락을 좋아한다는 그런..). 공길과 장생의 애정관계와는 달리 연산의 공길을 향한 애정은 좀 더 복잡하다. 연산의 왕이라는 계급과 공길의 광대라는 더 이상 낮아질 것도 없는 계급 사이의 거리. 공길의 놀이판을 따라하며 공길에게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연산의 욕망(녹수에게선 위로 받고 싶어 하는데, 바로 이 점이 젠더로 읽을 때의 핵심적인 차이다)과 공길의 빗나간 화살에 놀란 후 입 맞추는 장면. 연산이 쓰고 공길, 장생 등이 연기한 중국의 경극을 통해, 그리고 공길에게 보여준 첫 그림자 연극을 통해 공길에게서 엄마와 아빠를 동시에 찾고 싶어 하는 욕망. 이런 복잡한 요소들로 인해 연산에게서 ‘동성애’적 욕망과 이성애적 욕망을 동시에 느꼈다. 때문에 기회를 만들어 다시 접하고 싶고 그러고 나서야 셋의 관계를 좀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