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일전에 라디오에서 SM이란 단어로 장난치는 걸 들었다. SM이니, ESM이니 MM이니 하면서 웃는 걸 들으며 재미있다고 몸앓긴 했지만 재미의 기원은 불편하다. SM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순간적으로 감돌던 긴장감과 small mind라고 말하는 순간 웃음으로 바뀌는 분위기. 긴장감과 웃음, 그리고 이 간극은 SM을 부정적이고 금기시하는 사회문화적 합의 없인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합의에 동의하는 이들에겐 유머가 되지만 이런 합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겐 불편하다. SM은 상호 합의 하에 일어나는 가장 지적인 성적 지향이기에(여기서의 지향성은 관계와 무관할 수도 있다) SM을 ‘변태’ 성욕으로 인식하는 건 젠더(이성애주의)에 기반 한 폭력/횡포다. 그래서 장난치기로 했다. 폭력이 권력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권력으로 의미를 가지게끔 하는 이데올로기에 동의해야 한다. 이런 이데올로기에 동의하지 않는 순간, 의미는 전복되고 권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성애자가 비’이성애’자/이반queer/트랜스에게 변태라고 욕하는 것과 “그래, 나 변태야”라고 되받아치는 건 의미가 전혀 다르며 기존의 의미를 전복한 것이다(퀴어란 말 자체가 그런 거니까).

[#M_ 근데 쓰고 보니 장난이라기엔 처참하다-_-;;.. | 처참해서라기 보다는 내용이 별로라 그냥 백색처리;;;.. |
SM이라고 있다. Small mind의 약자로 소심이라고 한다. 일테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는데, 일정 시간 안에 답장이 안 오면 몸 상해서 삐지는 경우다. 문자가 잘못 간 건 아닌가, 불안해하기도 한다. 두어 번 정도 문자를 보냈음에도 답장이 없으면 몸 상해서 더 이상 문자를 안 한다. 답장 없음에 상처 받기 싫어서 아예 안 보낸다. 물론 답장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풀린다.

ESM/MM이라고 있다. Extreme small mind/Micro mind의 약자다. 핸드폰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으면 뭔가 잘못 보낸 것이 아닐까 불안해한다. 내용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보냈지만 뭔가 잘못된 내용이 있어서 상대방이 불쾌한 건 아닌가,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심지어, “어제까지 친하다고 믿었는데 그새 날 싫어하게 되었나봐” 하면서 자학한다. 바빠서 안 보냈을 수도 있고 핸드폰을 안 들고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도 자신이 뭔가 잘못해서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하는 거라고 단정한다. 답장이 오거나 그 사람과 만났는데 전과 다름없음을 확인해야 풀리지만 그래도 불안함이 남아서 이런 상황을 반복한다._M#]

바꾸고 있는 언어를 공유하기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며 여러 언어들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존의 불편한 언어들이 아닌 다른 언어들로. 일테면 몸앓다란 언어가 한 예가 되겠지. “보다”, “마음” 등과 관련한 언어들을 바꾸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리플을 달거나 할 때 쓰기가 난감한 언어도 있다. 아직 공유하지 않아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인도 즐거우면서 다른 사람과도 공유할 수 있는 언어, 어렵다.

몸: 카테고리 이름을 바꾸며..

태터툴즈로 블로그를 만들며 카테고리를 “흑백으로 부르는 달의 노래”와 “삶~앎”, 두 가지로 했다. 둘 다 이전의 블로그에서 사용한 카테고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몸에 핀 달의 흔적”과 “몸을 타고 노는 감정들”로 바꿨다.

어느 순간부터 두 개의 카테고리가 있을 필요가 없다 싶었다. “삶~앎”은 삶과 구분할 수 없는 앎/앎과 구분할 수 없는 삶을 의미했는데, 그렇다면 “흑백으로 부르는 달의 노래”에 쓴 글은 삶과 동떨어진 글일까? 이렇게 단순하게 제기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다보면 카테고리를 구분하기 애매한 순간들이 많았다. “삶~앎”이라는 카테고리 이름의 문제였다. 이 구분은 무거웠고 불필요하게 “삶~앎”이 아닌 내용을 다른 식으로 구분 하는 폭력적인 잣대가 되었다.

그래서 아예 카테고리를 하나로 만들까도 했지만, 그랬다간 나중에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둘로 나누면 그나마 찾기 쉽지 않을까 해서;;;

새로운 카테고리 이름은 결국 몸이다. “몸” 뒤에 붙은 수사들은 불필요한 장식일지도 모른다. [몸에 핀 달의 흔적]은 처음부터 계속 있었고 루인이 좋아하기에 달을 넣었다. [몸을 타고 노는 감정들]은 정말 동어반복이다. 몸이 곧 감정이고 감정이 곧 몸이니까.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면, 감정은 곧 정치다. 감정은 이성에 대립하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체화된 지식/이데올로기의 반응이며, 몸의 언어다. 자신의 몸을 느낄 수 있는 언어와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반응은 즐거움/아픔(감정들)이다. 코미디를 통한 웃음은 정치적인 문제이지 인류 보편이 아니다. 또한 루인은 존재 자체가 정치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존재 자체가 정치적이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여기서의 “정치적”은 기존의 지배적인 경계/정상성과 갈등한다는 의미. 불편함, 불쾌함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건 민감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몸과 갈등하며 폭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카테고리 이름을 바꾸면서, 앞으로 어떻게 구분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