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떠오르다: 계단공포증

며칠 전, 부음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도서관 복도를 걷고 있는데, 그날 새벽인지 전날 새벽인지 날짜가 애매한 꿈이 떠올랐다.

어느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올라가고 있었다고 하기보다 아주 높은 곳에 있었고 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을 갈등하고 있었다. 그 높은 곳은 구름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았고 안개 깊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장소였다. 그곳엔 이미 다른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한 사람은 루인을 보며 올라오라고 격려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한 끝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며 뒷짐 지고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올라가길 두려워했다.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느끼는, 혹은 자이로드롭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그런 아찔함과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올라가길 망설이게 했다. 한참을 망설였고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막상 올라가니 별것 아니라는 듯 아찔함 이라던가 떨어질 것 같은 걱정은 없었다. 그 순간,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밀려왔다. (올라갈 땐 계단이 아니었다.) 루인은 계단공포증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잠옷을 속에 입고 학교에 간 꿈을 꾼 적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루인 스스로도 몰랐다. 학교 계단을 올라가다 누군가 루인의 옷을 잡았고 그 순간 안에 잠옷을 입고 있음을 들켰다.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이 꿈은 오랫동안 몸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몰랐다. 이 꿈이 루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옷을 사러 가면 입어보라는 점원들의 권유(강요?)가 있지만 옷 입어 보길 꺼려했다. 사기 전에 한 번 입는 것이 귀찮아서가 아니라 불안함이 있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입지 않고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실제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런 불안에 시달린 적은 많다. 심지어 옷을 입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으면서도 옷을 안 입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옷을 살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평소에도 불특정한 순간에 정말 옷을 입고 있는 것인지, 옷을 안 입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벌거벗은 임금님도 아니고 옷을 안 입은 적도 없고 옷 가게에서의 불안이 실제 일어난 적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잠옷 꿈 때문에 그런 불안에 시달렸음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 꿈이 그제서야 떠오른 것도 아니고 종종 떠올리는 내용이었음에도 그 꿈과 옷의 불안이 연결되어 있음은 몰랐다. 이 연결고리를 찾자 옷의 불안도 사라졌다(고고학적 탐사인가).

며칠 전의 꿈이 떠오른 이유는 그것이 죽음에 대한 예감이었던 것은 아닐까, 해서가 아니라 루인의 계단 공포가 꿈에서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루인은 계단을 잘 못 내려간다. 올라가는 거야 별 문제가 없지만 내려갈 땐 항상 불안해하며 조심해서 한 걸음씩 내디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꽤나 늦게 내려가는 편이다. 불안은,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 어떡하나, 이다. 계단을 굴러 다친 적은 없다. 초등학생 시절 주변에서 많이 보는 깁스 한 번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계단을 내려가는 것에 불안해했다.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그 불안이 너무 심해 계단을 내려갈 때면 항상 계단을 내려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듯 한다. 문제는 그 원인을 모른다는 것. 아무리 몸을 뒤져 봐도 계단과 관련한 흔적이 없다. 계단을 굴러 다친 적도 없는데.

하지만 이건 다친 적이 있느냐 없느냐, 와는 무관한 건지도 모른다. 계단을 내려갈 때 마다 갑자기 발 앞이 꺼져서 한 길 낭떠러지로 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관련 있다. 길을 걸을 때면 순간순간 놀라는데, 바로 앞에 길이 있음에도 벼랑 끝에서 발을 내딛는 것 마냥 헛디디는 것은 아닌가, 해서다. 계단에선 이런 경향이 좀 더 심해진다. 내려가는 계간이 있음에도 발을 딛는 순간, 땅이 사라지고 끝없는 바닥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꾼 적 없는) 악몽. 백일몽도 아닌데 때론 정말 발밑이 아무 것도 없는 낭떠러지로 착각하는 순간이 있다.

갑자기 꿈이 떠올랐다. 꿈은 무슨 말을 걸려고 한 걸까.

채식주의 모임

한 카페에서 알게된 정보예요.
녹색연합의 베지투스란 채식모임이 있다고 해요. 루인도 방금 알았기에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세미나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게시판 글을 그대로 옮기면(홍보성 글이라 일부를 그대로 퍼옵니다)

[#M_ 보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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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회원이 아니더라도 참석할 수 있으니 편한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일시 : 2005년 12월 19일(월) 늦은 7시 30분
장소 : 녹색연합 1층 회의실(아래 약도 참조)

지난 모임에서 채식모임의 이름이 결정되었습니다.
“베지투스” 많이 이뻐해주세요^^*

앞으로 본격적인 채식모임이 시작됩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채식입문서를 읽고, 스터디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선정된 도서는 “하워드 F. 리먼의 <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가>-문예출판사”입니다. 책을 읽고 오셔서 의문 나는 점에 대해서 서로 토의를 할 텐데요, 혹 처음 오시는 분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주시기를 바랍니다.

채식 모임의 임시 게시판이 오픈 되어 있습니다.
모임 운영에 관해 의견 등의 제안이나 채식과 환경 그리고 생명에 관련된 자료나 정보를 제공하고 싶으시면 http://www.mtcamp.co.kr/love.htm으로 올려 주세요.

참석 여부를 알려주시면 모임 준비에 도움이 됩니다.
답변이나 게시글 또는 전화 부탁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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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 가시면 약도 등을 알 수가 있네요.
관심 있는 분 참고하세요.

마지막 수학 시험

어제로 학부에서의 마지막 수학 시험을 쳤다. 아직은 시험기간이고 조교일로 금요일까지는 시험과 관련한 일이 남아 있지만, F만 아니면 더 이상 수학 수업을 들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과냐 이과냐, 로 갈등하면서 수학, 한 가지 이유로 이과를 택했고 그래서 대학을 선택할 때도 수학과 중에서 ‘선택’했다. 그랬기에 수학과 생활을 잘 했을 거라고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적응 못하고 몰래 도장 파서-_-;; 휴학까지 했다. 물론 그 “부적응”은 수학과와 관련한 것이라기보다는 대학 생활 전반에 관한 것이지만, 루인이 원하는 것과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 사이의 괴리는 있었다.

루인이 원한 건 수학이 어떤 철학적 기반에 있는지, 수학을 통해 어떤 식으로 삶을 해석할 수 있는지, 하는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걸 가르치는 과목은 없다. 남아있는 방법은 유일한데, 혼자서 공부하는 것.

그랬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은, 시험이야 졸업을 위해서라도 기존의 방식을 따른다 해도 그 외의 시간(시험기간을 제외한 시간)엔 루인 식으로 해석하기였다. 비록 그것이 “무식한 오독”일 수 있다 하더라도.

그래서, 일테면 투사projection란 개념을 배운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이다. 즉, 심리학/정신분석학을 통해 투사 개념을 배운 것이 아니라 위상수학을 통해 투사 개념을 몸앓았다. 차이difference 역시 페미니즘을 통해서 몸앓은 측면도 있지만 미적분을 통해 그 의미를 확장하고 더 풍부하게 몸앓을 수 있었다.

이렇게 수학을 루인 멋대로 해석하며 배운 소중한 자산은,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고등학교 수학의 경우 정석 문제집만 달달 외우면 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학은 답을 요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학문이다. 그것도 어떻게 하면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답을 찾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1+1의 답이 2인 건 유치원생 정도라도 알고 있겠지만 2라는 “정답”보다는 어떻게 해서 2가 되는가를 고민하는 과정. (이런 연유로 문제풀이과정/레시피는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다.)

또 하나의 소중한 자산은, 전제를 질문하는 것이다. 수학 수업을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수업 첫 시간에 배우는 내용은 증명이나 결과들이 아니라 그 수업/내용이 어떤 위치/맥락에 있는가, 이며 어떤 전제에서 출발 하는가 이다. 일테면 “차이가 차별이 되어선 안 된다”란 언설이 있다. 비록 이 언설 자체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런 언설은 “차이” 자체를 질문하지는 않는다. “차이”가 있음을 당연시 한다. 반면 “차이”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구성/발명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페미니즘, 트랜스, 이반정치학 등등이면서 동시에 (루인이 배운) 수학이다. 흑인과 백인은 다르지만 차별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라 어째서 피부색이 차이로서 의미를 가지며 그로인해 비가시화되는 집단/권력은 누구/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 이런 학문적 토대였기에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이 반드시 180도는 아니던데, 라며 다른 기하학을 열었고 괴델과 같은 이가 등장할 수 있었다.

루인이 수학을 몸앓으며 가장 신났고 소중한 지점들은 바로 이런 지점들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루인게게, 글쓰기 방식/형식이나 말 하는 방식/내용 등에서 수학과 티가 난다고 말하면 당황한다. 그 사람이 의미하는 수학(과)적인 것은 무엇일까. 논리적인 글쓰기? 하지만 논리는 사회학과나 철학에서도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더구나 논리란 것도 시대에 따라 그 시대가 수긍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루인이 아는 한, 수학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이기도 하지만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이 기존의 권위를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일테면 학부생이 교수의 해석과 다른 해석을 제안했고 그것이 아름답다면 그 자리에서 곧 바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빠지는데, 수학도 과학일 때, 황우석 집단이 재검증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아마 이쯤 되면, 문학도 그래, 사학도 그래, 등등의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결론은 버킹검”이 아니라-_-;;; 학문을 칼로 두부 자르듯 그렇게 구분할 수 없다는…;;; 무슨 결론이 이래? 흐흐;;;;;

이제 수업을 통해서는 더 이상 수학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다. 대학원에 가서도 수업을 들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겠지만 그럴 엄두는 안 난다. 그저 가끔씩 수학책을 읽으며 그 정도에 좋아할 밖에.

[#M_ 덧.. | 흐흐.. |
1. 루인의 바람 중 하나는 40이 넘어, 그러니까 현재 하고 싶은 공부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다시 수학과(학부)에 입학해서 배우는 것이다. 누군가, 인간의 평균 수명이 150살 정도 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는데, 그렇다면 나이 40에 수학을 처음부터 배우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문제는 돈이다.ㅠ_ㅠ)

2.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얘기 중 하나. 수학 증명에도 젠더나 인종이 작동할까? 과학 교과서 등에서 내용을 설명하며 ‘남’학생은 실험을 하고 ‘여’학생은 옆에서 보조하는 기존의 젠더 역할을 반복/재생산하고 있는데, 이런 거 말고, 학문 집단에서 ‘여성’에 배타적인 풍토 같은 것도 말고, 증명 내용에서 젠더와 같은 요소는 없을까 하는 궁금증. 일테면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하는 그 내용 안에 젠더가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다. 다른 식으로 물으면 이성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는 묻지 않고 그냥 증명 자체를 묻는 것. 물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재밌겠다, 하지만…”이 대세다. 루인도 그냥 혼자 비실비실 웃는 정도의 장난처럼 여기는 편이다. 하지만 또 모르잖아. 이와 관련해서 공부하다가 의외의 측면이 보일지도. “의심하라/모오든 광명을!”이란 시 구절처럼 의심하라고 배웠으니 증명 역시 식민주의/탈식민주의의 예외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어. 흐흐. 같이 하실 분? (어.. 진지하다;;)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