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공인하는 기부?

두 장의 소득공제용 기부금 영수증이 도착했다. 연말이긴 한가 보다. 하지만 공제할 소득도 없으니 그냥 책장 한 곳에 보관하고 말겠지.

기부금이라고 부르니 불편하다. 루인은 어디에 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있는 것이니까.

2001년 마지막 달의 어느 날이라고 기억한다. 서울로 와서 인터넷책방의 포장알바를 하던 그 어느 날이었다. 시간 당 계산해서 받았으니 한 달 해봐야 생활비로 그렇게까지 여유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생활비엔 당연히 방값에 각종 공과금을 포함한다). 다만,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이 몸에 있었다.

아는 것 없고 어딜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지만 루인이 원하는 정치적 지향에 어떤 형식으로든 참여하고 싶었다(단체에서 활동하며 배워가도 되는데 아는 게 있어야 단체에 참여할 수 있다고 몸앓았다, 지금도 이런 경향이 없진 않다). 그래서 한 선택이 회원가입이다. 회원가입을 결정하기까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쉬운 것도 아니었다. 한편으론,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때 큰 액수로 기부금 내야지, 했다. 관심 있는 곳의 홈페이지를 찾지도 않았다. 기본적으로 혹은 누구나 한 달에 몇 십 만원씩 낼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랬기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회원가입 약관을 봤을 때, 당황하기까지 했다. 의외로 액수가 적었는데, 한 달에 만원 정도였다. 별 망설임은 없었는데, 한 달 수입이 50만 원 일 때 참여하지 못하면 500만원 일 때도 참여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니 스스로에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비록 종교가 없고 기독교/천주교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이나 먼 삶을 살(았)지만 십일조란 말도 몸에서 떠돌았다. 내야한다 아니다가 아니라 그 의미가 좋았다. 더구나 운동단체에 참여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상당한 공부니까.

물론 사람마다 한 달에 만 원이란 금액의 크기는 다르다. 루인에겐 최소 생계비로서 약간 빠듯한 알바비였고 그로인해 갈등이 있었다(최소 생계비 하니까 다른 의미랑 겹칠 것 같아 덧붙이면 방값이랑 각종 공과금 내고 하루 두 끼의 밥을 먹고 몇 권의 책을 살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을 의미한다, 루인의 식단은 간소함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간소해서 문제다-_-;;). 하지만, 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떻게든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500원 정도 저축하는 셈이었으니까.

이렇게 시작해서 4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현재 4곳에 참여하고 있다. 한 곳이 늘어날 때 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처음 시작과는 선택의 기준이 달라졌다. 한 달 생활비의 여유를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참여 역시 당연한 지출로 여겼다. 책을 보는 것이 시간이 남아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보는 것이 듯.

4년 전 보다 방값은 두 배가 넘으면서 더 좁은 집으로 이사했는데(계약금이 좀 차이가 난다;;) 생활비는 그때에 비해 그렇게 많이 늘지 않았다. 때론 50원 단위로 생활비를 계산하며 사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어느 한 곳을 취소한다거나 그만하고 싶은 몸 보다는 돈이 빠져나갈 날 인 것 같은데 빠져나가지 않은 것 같으면 도리어 걱정한다. 참여하고 싶은 곳이 더 있는데도 정말 마지노선에 걸린 생활비라 더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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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곳에 회비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기존의 단체에 회원으로 참여해야만 활동/운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시작하는 첫 문장에도 적었듯, 소득공제용 영수증은 두 곳에서만 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두 곳에선 아직 안 보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낼 수도 없는 곳이란 의미다. 이런 차이는 은행에서 신청할 때부터 난다. 영수증을 보내주는 곳은, 신청할 때 언제까지라고 정하지 않지만 영수증이 없는 곳에선 언제부터 언제까지라는 계약기간이 있다. 영수증이 없는 곳의 경우, 한 곳은 단체이지만 이 달의 회비납부내역을 게시판에 쓸 수 있을 만큼 납부 인원이 적은 것 같고, 다른 한 곳은 단체가 아니라 매체이며 창간할 때부터 “친구들”로 기념되어 있을 뿐이다(어딘지 눈치 챈 분들도 있을 듯…).

정말 씁쓸한 일은 “법인세법시행규칙 제18조 제1항 39호에 의한 공익성기부금대상단체”라는 말 때문이다. 운동단체마저도 법률/국가에 의해 그 공익성이 ‘인증’되는 사실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하긴, 퇴폐 3등급이기도 했던 성적 소수자(비’이성애’, 이반queer, 트랜스 등등) 관련 단체가 “공익성” 단체로 ‘인증’될 리 만무하지만, NGO단체가 국가에 의해 ‘인증’된다는 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루인의 참여가 국가에 의해 ‘공인’되며 그 중 절반만 ‘인증’되는 격이다. 이쯤 되면 씁쓸함이나 짜증을 넘어 분노가 슬금슬금 피어오른다.

물론 이런 소득공제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운동단체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래서 (운동과 일상을 구분할 순 없지만)운동이 더욱 일상화된다면 좋은 일이지만 국가에 의해 그 기준이 설정되고 구획된다는 사실은 (과도한)국가주의 혹은 다시 한 번 국가를 최종심급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해서 불편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운동단체의 딜레마이기도 할 것이다.)

그냥, 영수증을 받아들고 떠오른 불만이다.

*루인에겐 성격이 좀 다르게 다가오지만, 일 년에 한 번 “후원”하는 곳도 있다(일 년에 한 번 후원한다니, 표현이 참 웃기다). 한 번 내면 일 년에 책 네 권을 보내주고 각종 혜택도 있다고 한다. 굉장하지 않은가. 관심 있으신 분은 루인을 통해서….(그렇다고 루인에게 떡고물이 있는 건 아니니까, 의심은 마세요. ………정말? ㅋㅋ)^^;;;

용서받지 못한 자

지난 주 금요일, 정희진 선생님 강의 시간에 이 영화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 언급이 없었다면, 이 영화를 보다 쇼크를 받았거나 짜부라졌겠지.

영화에서 군대는, 단지 은유일 뿐이다. 권력과 폭력의 팽팽한 긴장감에, 숨이 막혔다.

따로 더, 리뷰를 쓸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아직은 쓸 용기가 없다. (쓴다 해도 이곳에 공개하지 않을 것 같다.) 직면하지 않고 도망치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감당하기가 힘들다.

겨울. 부음. 추위.

얼도록 찬 바람이 분다. 이런 날이 좋다. 너무 추워서 숨쉬기조차 힘든 날. 그래서 가픈 호흡을 뱉어야 하는데, 추위가 온 몸을 서늘하게 만들어서, 기도氣道까지 서늘하게 만들어서, 좋다.

이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이 좋아서 괜히 입을 벌리고 바람을 들이 마신다.

하지만 내일이 시험인데, 학부 마지막 시험인데 지금 이렇게 나스타샤랑 놀고 있다. 그 만큼 자신이 있어서냐면 결코 아니다. 반쯤 포기하는 몸으로 이러고 있다. 몸이 어수선해서 시험공부에 집중을 못 하고 있다. 오전 중에 친척의 부음을 들었다. 종종 친척의 죽음을 예감하는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다만, 전화를 받기 직전 불길한 예감은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이 이미 소식을 들었냐고 했을 만큼, 목소리가 나빴다.

이 추운 날 한 사람이 죽었다. 별 다른 느낌은 없다. 다만 고생이겠구나, 싶다. 사촌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내일 다시 해 봐야지, 하면서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어렵다. 하긴, 이럴 땐 미리 계획을 세워봐야 소용없다. 그냥 전화를 하고 나서 그 다음, 어떻게 하는 거다.

유난히 추운 날 한 사람이 죽었다. 사무실에서 내일 시험을 준비하다 지루해서 玄牝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너무 추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눈물조차 나지 않을 만큼 추웠다. 그냥 허虛하다. 별다른 느낌도 없고 죽었다는 사실이 실감도 안 난다. 그저, 이 추위에 망자를 보내려면 고생하겠구나, 하는 산 사람들 걱정만 든다. 지난 추석, 몇 달 사이 머리가 하얗게 샌 모습을 봤는데 그게 마지막이었구나, 하는 몸앓이를 했다. 그러고 보니, 자주 연락을 안 하던 사촌에게 안부 전화를 하고 싶었던 며칠 전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안부를 물어야지, 했는데 시간이 지났다. 예감이라면 그것도 예감이다. 다만 너무 사소하게 여겨져서 예감으로 인지 못했을 뿐.

유난히 추운 날씨다. 이런 겨울 느낌이 좋다. 하하, 웃기엔 찬 바람에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고 찡그리기엔 기도까지 차가운 느낌이 너무 좋은. 눈물조차, 콧물조차 흐르지 않을 정도로 추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