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를 성폭력이란 관점으로 보는 이유

#빨간부리님의 글 “황우석의 연구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본다”란 글에 대한 답변(?) 비슷한 글이예요. 빨간부리님이 글을 쓰게된 동기는 루인이 쓴 “황우석이란 불편함 혹은 황우석이란 성폭력”의 리플을 참고 하시고요. 그러니 빨간부리님의 글을 먼저 읽고 이 글을 읽으셨으면 해요.

“황우석이란 불편함 혹은 황우석이란 성폭력”이란 글을 쓸 때, 그 의도는 스스로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루인이 동의할 수 있는 논의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많은 논의들이 불편했고 루인은 지금 어떤 지점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확인의 과정을 통해 뒤죽박죽 상태의 몸을 한 걸음이라도 진전하기 위해 저 글을 썼다. 그렇기에 엉성한 글이다. 이 점을 밝히는 건, 그 글이 루인에게 가지는 위치를 말하기 위해서다.

빨간부리님의 리플을 읽고 성폭력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물은 것은 성폭력에 대한 정의가 달라 황우석 사태(?)를 성폭력이란 관점에서 볼 수 없다고 한 줄 알았다. 한국사회에서 성폭력에 대한 정의는 너무 많은데 가해자, 사회적 통념, 성폭력특별법, 페미니스트만 봐도 차이가 크지만 페미니스트 내부에서도 성폭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많은 입장 차이를 보인다. 루인 역시 다른 사람들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루인의 입장에서 좁게(!) 정의하면 젠더폭력(gender violence, violence against women)이다. 물론 젠더폭력 혹은 여성에 대한 폭력은 페미니즘에서 혹은 UN에서 정의하는 성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이다. (평소의 루인 같으면 조금 다른 정의를 쓰는데 여기서 젠더폭력으로 쓰는 이유는 “황우석이란 불편함 혹은 황우석이란 성폭력”에서의 성폭력을 젠더폭력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폭력은 젠더화된 역할, 즉 흔히 말하는 ‘여성’다움/’남성’스러움의 강요 혹은 이런 이데올로기 역시 성폭력 범주에 포함한다. 여아 살해(여아 낙태)나 (젠더 사회 맥락에서의) 다이어트, 황산테러, ‘아내폭력’ 등을 성폭력 범주에 포함하는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고.

(빨간부리님은 이번 사태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루인에게서 ‘처음’이라고 하셨지만 루인은 많이 접하고 있어요. 또한 PD수첩이 제기 하기 이전부터 이 난자”채취”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속적으로 있었고요.)

” “연구를 위해 여성의 난자 채취 행위가 성폭력이다” “이라고 빨간부리님은 루인의 글을 해석하셨는데 [난자 “채취” 행위=성폭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개입되어 있는 권력과 정치경제학적인 맥락들이 성폭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테면 연구원과 교수 사이의 권력관계에 의해 사실 상 강제되면서도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없는 지점들, “난자 기증 운동”이 마치 애국이라도 되는 냥 여겨지는 분위기와 그로 인해 이 지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매국노라도 되는 냥 여겨지며 “난자 기증 운동”에 반대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공포/억압적인 분위기, 죽어서야 비로소 “딸/누이”가 될 수 있는 기지촌 성판매 여성처럼 난자 기증에 참여해야만 비로소 국민(“기증자”)이 될 수 있는 맥락들이 성폭력이라는 의미이다.

동시에, “난자를 기증/판매한 여성을 어떤 식으로 봐야할지 모르겠다”란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언설 속에 들어있는 타자화/대상화하는 시선 역시 문제이다. 가난해서 혹은 돈이 필요해서 난자를 판매하는 것이 왜 문제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행위가 문제다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화된 빈곤문제에서 다시 접근하자는 의미이다. ‘여성’의 취업은 자아실현이나 자립이고 ‘남성’의 취업은 생계부양 혹은 국가/가족을 위해서라는 식으로 보는 관점/폭력, 비정규직의 70% 정도가 ‘여성’이며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여전히 두 배 가까이 되는 문제들과 함께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들이다.

“연구라는 단어에 초점을 두고 접근하여 보면 난자채취를 하든 정소제거를 하든 연구의 대상이 무엇이든 단지 연구일 뿐이고 그것이 성공하여 우리 인간에게 좀 더 유익할 수 있다면 위험이나 고통이 따르더라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빨간부리님의 글 중 이 부분을 읽고 당황했다.
1. “연구의 대상이 무엇이든 단지 연구일 뿐”이라고 하셨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루인의 입장이다. 종종 영화를 보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영화를 영화로 안 보고 너무 정치적으로 보는 것 아냐”라는 말을 듣는다. 루인에게 이런 문장은 언어가 아닌데, 이데올로기/정치와 무관한 텍스트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이라도 그 사회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맥락 속에서만 예술로 불린다. 살아생전에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고 죽은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순수한 예술”이란 없다. 그 사회의 패러다임이 “순수한 예술”과 “대중적인 취향”을 구분한다. 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수학이 과학이냐 아니냐, 라는 논쟁 역시 가능하지만 수학을 과학의 범주로 볼 때) 수학을 전공하며 깨달은 것은 수학은 엄밀한 논리에 기반 한 이성의 결정체가 아니라 상상과 가정에 바탕 한 가설 덩어리이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많은 이론이나 정리들이 당시엔 “정신병자의 헛소리”라고 여겨진 사례는 허다하다. 물리학이나 생물학 등의 다른 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나 자본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발전하기 마련이다. 수학에서 요즘 가장 각광 받고 있는 분야는 정수론인데 그 이유는 암호학이 정수론에 기반하고 있어서이다. 인터넷 시대에 암호와 보안은 중요한 문제이며 그래서 정수론/암호학은 취직이나 펀드들에서 가장 선호되고 있다. 돈 없이 연구를 할 수 없는 자본주의 현실에서 연구는 “단지 연구”일 수 없다. 펀드를 주는 사람의 요구에 의해 연구 내용이 구성된다. 구강피임약이 제약회사의 중요한 수입원일 때 구강피임약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로 펀드를 받기가 지극히 어려우리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객관성/보편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객관성/보편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경합하고 구성된다는 의미이다.)
2. “인간에게 좀 더 유익할 수 있다면 위험이나 고통이 따르더라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 한다”고 하셨는데 당연히 여기에도 반대한다. 왜냐면 그 과정에서 누가 위험하고 누가 고통 받느냐고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 혹은 사회적 통념에 빵을 훔치면 처벌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내용은 계급 차별적인데 이건희 같은 사람은 애시 당초 이런 조항에 해당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가난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다. 법 역시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계급/계층을 대변한다. 연구 과정에서 누가 위험하고 누가 고통 받느냐고 물어야 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그것이 자원自願이든 동원動員이든 부자 보다는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제약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약의 임상실험을 위해 알바를 모집할 때, 지원할 사람은 이건희나 국회의원의 아들(아들인 이유는 대체로 ‘남성’만 뽑기 때문이다)이기보다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돈이 필요한 계층/계급(일테면 매달 간당간당한 생활비로 사는 루인 같은 자취생이나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의 문제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젠더라는 폭력이 발생하며 그래서 성폭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급이나 젠더 문제가 아니라 해도 연구 과정에서 누군가 고통 받거나 위험이 따른다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왜냐면 더 많은 시간 혹은 비용이 들더라도 위험이나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해야 한다면 그건 폭력이라고 본다. (왜 갑자기 하인츠 딜레마가 떠오를까;;; 이익/국익에 대해선 후술.)

빨간부리님의 글을 읽으며 잘못 독해한 것이 아니라면 빨간부리님은 한국사회(젠더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을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근대적 개인, 일대일의 대등한 관계로 가정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비단 한국사회뿐 아니라 젠더화된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이는 몇 해 전 있었든 김선일씨 사건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시 김선일씨 참수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돌았다. 하지만 참수 동영상이 돈다는 말과 동시에 김선일씨의 인권을 말하며 동영상 유통/유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하게 일었고 김선일씨 참수 동영상은 금방 사라졌다. 반면 1990년대 초반 주한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윤금이씨의 사진이나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한 신효순, 심미선씨의 사진은 아직도 계속해서 돌고 있다. 특히 윤금이씨가 죽었을 때 당시의 사진은 반미운동 진영에서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다. 인권은 결코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으며(이런 맥락에서 보편적 인권담론은 허구면서 동시에 상당히 급진적인 내용이다) 젠더에 있어서 그것은 극명하다. ‘남성’의 몸은 인간이기에 인권이 우선시 되며 반미/반전에 쓰이지 않지만 ‘여성’의 몸은 거의 항상 반미/반전의 도구로 사용된다. 일테면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남성’도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하지만 다이어트나 몸짱이 아니라고 사회생활 자체를 못하진 않는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다고 몸짱이 아니라고 취직이 안 될 거라는 고민은 안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여성’과 ‘남성’의 몸은 결코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황우석 사태에서 국익과 진실이 경합할 수 있는 이유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황우석 사태를 성폭력이란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뿐 아니라 지금까지 말한 지점)에 있다.

결국 루인은 황우석을 둘러싼 현재 사태에서 비가시화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항상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언제나 목소리가 없다고 간주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수학에서 가장 중요시 하듯 이 사태에서 마치 당연시 하고 있는 그 전제들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덧붙이면 PD수첩이 그렇게 욕을 먹는 이유는 국익에 반해서 혹은 감히 “한민족의 자랑”인 황우석에게 문제제기를 해서가 아니라 ‘남성’연대를 위반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PD수첩이 의도했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들이 드러낸 지점들이 그런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국익 혹은 이익이라는 말이 루인에겐 상당히 불편한데 그 국익이 누구의 것이냐 하는 지점 때문이다. 비록 루인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곤 해도 가족구성권 등 많은 권리가 박탈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지난여름 한 강의에서, 국적법과 관련한 의미심장한 사례를 들었다. 선생님(젠더 범주에서 그리고 주민등록증 코드번호로 선생님은 ‘여성’이다)은 소위 말하는 이중국적자였다, 고 한다(오랫동안 그 문제를 선생님도 몰랐거나 그렇게 신경 쓸 부분이 아니었다고 한다). 문제는 최근 국적법이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면서부터 인데, 어느 날 선생님은 한국국적이 아니라 미국국적으로 되어 있더란다. 선생님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한국국적을 취득하려고 했지만 그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유승준 등의 사태를 통해 봤을 때, 선생님이 ‘남성’이었다면 본인의 의사도 묻지 않고 미국국적으로 변경했을까.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군대에 입대한다고 했으면 국적변경 과정이 그렇게 지난할까. (이 역시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짐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결국 국익에서 말하는 국가가 누구의 국가냐고 묻고 싶다. 삼성이 세계적으로 선전善戰하고 있지만 삼성의 노동자들과 그 하청업체,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의 세계적인 선전을 국익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누구에게 해당하는 말일까. 황우석의 국익, 국익 하는데 루인의 국가는 아닌 듯 하다.

#”채취”가 아니면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는 루인도 잘 모르겠어요. 더 고민할 문제죠.

#루인에게 玄牝은 현재 루인이 살고 있는 방을 뜻해요. 그냥 방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玄牝이라고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이죠. 루인이 만든 언어는 아니고요,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언어예요. 노자도덕경에서의 뜻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루인이 본 해석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노자의 이상향, 지향하는 공간 정도랄까요.

#”난해”하다는 말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한 면이 있지만, 그 자체를 사유할 필요가 있을 듯해요. 왜 난해하게 느끼는지, 난해하다는 게 뭔지. 그런 의미에서 루인의 글이 “난해”하다면 그건 빨간부리님과 루인의 세계관이 달라서일 것 같아요. 사실 페미니즘(뿐 아니라 이반정치학 등)이 바라보는 시각은 기존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난해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봐요. 그렇다고 루인이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아느냐면 당연히 루인 역시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죠.

몸이 된 음악/노래

#…오래되었지만 선명한 기억, 하나

2002년 가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휴학 혹은 자퇴를 고민하고 있었다. 대학이란 곳에 회의했고 실망으로 몸을 채웠다. 그해 봄학기부터 학교를 다니기가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겉돌았고 생활은 학교 보다는 알바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학교는, 그냥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가을학기가 되었고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어떤 수업도 재미가 없었고 그만 다니고 싶음이 온 몸을 타고 돌았다. 자퇴하자, 자퇴하자, 그렇게 몸이 하는 말을 듣길 한 달여, 결국 휴학을 선택했다.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 자퇴를 계획했지만 우선은 휴학하고 알바를 하며 살기로 했다. 고졸이라 말했고 재수생이냐고 묻는 사람에겐 고개를 도리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무엇이 힘들었을까. 2001년부터 2003년까지가 삼재였음은 나중에 알았다. 삼재가 아니어도 그 시절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되는 일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학교가 문제였는지 우울증이 문제였는지는 애매하다. 그 모두였을 수도 있고 어떤 이유에 직면할 용기가 없어 학교를 탓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학교생활이 너무도 힘들었고 싫었다는 것이다.)

휴학은, 이성애혈연가족 몰래 했다. 혈연가족에겐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행세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 열 시간의 아르바이트. 이른 새벽엔 일본어 학원에 다녔다. 어두운 玄牝에서 눈을 뜨고 오전을 머물다 한 시간 걸리는 곳으로 12시까지 갔다. 열 시간을 일하고 다시 한 시간 걸려 玄牝으로 돌아왔다. 잠들고 알바 하는 삶. 그 시절 내내 들었던 유일하다시피한 음악은 Muse였다. 당시 두 장의 앨범이 나온 상태였기에 가는 길에 1집을 들으면 돌아오는 길엔 2집을 듣는 식으로 살았다. 가끔은 Beth Gibbons의 목소리에 위로 받았다.

Keith Jarrett을 만난 건, 그 즈음인 것 같다. 하지만 가을에 만난 Keith Jarrett은 그냥 그랬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앨범을 샀지만 뭐랄까, 좋지만 그냥 좋다는 느낌 이상의 무엇이 없었다.

12월이었을까,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시간이라고 기억한다. 추웠고 그날은 눈비가 내리고 있었다. 눈인지 비인지 헷갈렸다. 검은 아스팔트의 어느 부분엔 눈이 쌓여있고 어느 부분은 비에 젖어 얼어가고 있었다. 우산을 쓰지 않고 다녔기에 옷이 젖어갔다. 검게 물든 아스팔트에 비친 모습을 보며 가뭄이던 눈동자에 눈물이 고여 갔다. 그때 듣고 있던 음악이 Keith Jarrett의 [The Koln Concert]였다. 혹자의 말처럼, 죽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쓴 글이 몇 있다.

[#M_ Wimp… | 2003.01.19 |
어둠을 구성하는 물질….
그 정체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물질.
주변의 무엇과도 반응하지 않는 물질.

종일 방 안 가득한 어둑함에 중화되어

자꾸만 눈물이 흐르고 있다.

그 뿐이다._M#]
[#M_ Keith Jarrett – Koln Concert (Jan 24, 1975) | 2004.11.06 |
이 곡을 기억해

그해 눈이 비처럼 내리던 날
옷은 머리는 눈에 젖어가고 있었지
아스팔트 검은 거리는 녹아가는 눈에 젖어 있었고

걷고 있었어
10시간에 가까운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던 길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검은 거리에 비치는 모습에 낯설었어
무언가를 울컥 토해낼 것만 같았지만
텅 빈 속은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고

온 몸은 젖어 가는데 추위도 느끼지 못하고 걷던 12월의 늦은 밤..
어떤 이는 이 곡을 듣고 죽음을 생각했다고 해
그래, 알아.

루인 역시 그랬어
한 없이 어두운 방으로 돌아가던 길에
더 이상 추락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도 자꾸만 추락하기만 했던 그때

루인 역시 그랬어
눈이 비처럼 내리고 내 딛는 걸음마다 질퍽거리는 절망이 묻어날 때
루인도 같은 생각을 했어_M#]

#…그리고

어떤 계절에 들어야만 몸이 아픈 음악이 있다. 그 계절이 되면 저도 모르게 반복해서 듣고 있는 음악이 있다. Keith Jarrett의 [The Koln Concert]가 그렇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추운 날, 마른 나무가 창백하게 눈부신 날. 그런 계절에 들어야 비로소 음 하나하나가 시리게 몸에 사무친다.

Sigur Ros를 처음 접한 시기가 언제였을까. 2002년 가을 혹은 겨울, 그 즈음이었겠지. 처음 들었을 땐 너무 좋았다. 그래서 앨범을 샀고 어떤 날은 너무 좋았지만 어떤 날은 지루해서 끝까지 듣지 않고 다른 앨범으로 바꾸곤 했다. 왜 그랬을까. 오랫동안 그 이유를 몰랐다.

어제, 애드키드님의 블로그에서 Sigur Ros에 대한 글을 읽고, 아, 그랬구나, 했다. 몰랐다. Sigur Ros가 좋았던 시간이 추운 겨울이었다는 것을.

종일 애드키드님이 선물해주신 음악을 들으며,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렸다. 서늘하게 푸른 빛. 여러 해 전, 눈을 감았다가 조심스레 뜨면 푸른빛이 감돌며 눈부신 겨울 공기가 펼쳐지는 광경을 본 후, 겨울을 좋아하게 되었다. 겨울이란 그런 계절이다. 서늘하게 시리지만 그래서 묘하게 감싸주는 무언가가 있는 계절. 눈을 감고 걷다가 눈물을 흘리게 되는, 흐르는 눈물이 서늘하게 식어서 울음의 감정이 눈물이 흐른 흔적을 따라 차가운 기억으로 남는.

Sigur Ros의 “Hoppipolla”을 종일 반복해서 들으며, 아직 녹지 않고 푸르게 빛나는 눈 위에 눕고 싶었다.

Keith Jarrett의 [The Koln Concert] 이후, 겨울이면 떠오를 또 한 곡의 음악과 만났다.

[#M_ + | – | #Keith Jarrett의 [The Koln Concert] 앨범 중 한 곡을 올려요. 가장 좋아하는 곡은 첫 번째 곡이지만 너무 길어 마지막 곡으로. Keith Jarrett – 04-Koln, January 24, 1975, Part IIC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