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걸린 메일

어제, 조교 한다고 선생님께 ‘보고’ 메일을 보내는데, 믿거나 말거나 장장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얼마나 길게 적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오해. 긴장하느라고 쉬 쓸 수가 없어, 몇 줄 쓰고 회피하고 몇 줄 쓰고 회피하고 하면서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아무리 봐도 맘에 안 드는 내용에 어떻게 써야할 지도 모르겠고… 잉잉

형식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 형식은 지켰는데, 그럼 “~~요”라고 맺어야 할지 “~습니다”라고 맺어야 할지도 갈등이었고 루인이 좋아하지 않는 언어이기에 블로그나 발제문 등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루인 식의 다른 용어들이 있는데, 선생님께 그런 용어를 쓰자니 난감하고.

이런저런 갈등으로 결국, 지극히 형식적인-_- 그래서 너무도 재미없고 심심하고 평이하게(결국 “`습니다”로 맺었다. 아- 싫어-_-;;) 간신히 썼다. 당연히 불만스러웠고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몸앓다가 그냥 눈 질끔 감고 보내고 말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평소 루인 식으로 보냈으면 좋았을 걸…

대화의 ‘조건’

전쟁 혹은 폭력의 반대말은 고요한 상태가 아니라 격렬한 대화라는 말, 루인이 참 좋아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대화가 모든 발화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루인에게.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우선 말하고 듣기라고 몸앓는다. 물론 이 말하고 듣기란, 몸의 전체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이전에도 말했듯 누구에게나 자신 만의 언어가 없는 것이 아니기에 누구나 ‘말하기’는 하고 있다고 몸앓는다. 그것을 자신과 다른 타인들이 들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대화라면 최소한 말하기 뿐 아니라 듣기 또한 핵심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단지 듣기만 한다면 그건, “그래, 그러니 우리는 달라.”라는 식의 결과만 초래하거나,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어쨌거나 내 말 들어!!”라는 식의 폭력만 초래할 뿐이다. 말하고 듣는 과정을 통해 변화變化(transforming, becoming, metamorphosis, …)하는 것이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몸앓는다. 이러한 자기 변화 과정이 없다면 그건 대화가 아니라 독백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소위 말하는 마초들의 성폭력 발언/행동들(발언은 행동이 아닌가?)이나 권력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는 것은 권력의 과시/폭력이지 그것이 대화라곤 몸앓지 않는다. 그것이 대화이기 위해선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읽고(positioning) 이를 바탕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그런 소통을 통해 계속해서 변화해 가는 것이다.

그럼 이제까지의 권력자(혹은 스스로를 주체로 호명하는 이들)들에 의해 생성된 담론들은 틀렸다는 말일까. 물론 아니다. 그런 담론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담론은 무수한 다른 담론들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런 담론이 진리/객관/보편성이었다면 격렬한 대화를 통해 그런 담론은 특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경험일 뿐, 보편적인 경험이 아니란 것을 깨닫는 것이다.

격렬한 대화는 이런 거라고 몸앓는다. 물론 현재의 몸앓이일 뿐이지만, 대화를 위한 그리고 그것이 대화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있다는 것이 현재의 믿음/몸이기도 하다.

담 학기 일정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조교를 하게 되었다. 학교 생활 첫 조교이자 학부 생활 마지막 조교가 되지 않을까 한다. (대학원 가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고.)

사실,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 하는 것이라 서툴기도 할 것이고 완전히 낯선 일이라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어색함도 없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조교비 하나만 믿고-_-;; 하기엔 다른 기회비용이 더 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냥 하기로 했다. 낯선 일이라는 재미도 있을 것이고 내키면 조교를 빙자한 청강도 느긋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몸을 타고 논다.

그리하여 담 학기 일정에 수정이 가해졌다. 한 과목 수강에 대학원 수업 두 과목을 청강할 예정이었는데, 여기에 서너 과목의 조교까지. 이러다 보니 어쩌면 청강 한 과목을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듣고 싶은데… 이 갈등은 사실 좀 이상한 것이다. 청강하기로 한 두 과목 중 지금 갈등 중인 과목은 애초 예상에 없던 과목이었다. 조금 듣고 싶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애써 듣고 싶음은 없는 그런 과목. 그런데, 이런이런. 몇 주 전, 한 모임(회의?)에 갔다가 얼결에 청강하게 되었다(수동태에 주목!). 그러고 나선 주교재까지 제본한 상태였는데, 얼결에 청강 한다고 한 후 정말 듣고 싶어진 것이다-_-;;; 암튼 그런 상황의 과목인데 학부 조교를 하게 되면 어찌될런지. 며칠 몸앓이를 해봐야겠지만, 글쎄…

(아는 사람은 알지만 갈등 중인 이 과목 교수를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아예 수업을 한 번도 안 듣는 방법도 실천 해볼까하는 몸앓이도. 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