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던 그 날인, 어제라는 날짜에 알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어제는 포스팅도 다이어리도 쓰지 않았다.
그냥 공백으로 남겨 두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하루였다.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하루였다.
이렇게 햇살 나고 약간 덥거나 약간 서늘한 날
가슴에 멍 하나가 퍼렇게 익어서
이젠 아프지도 않은데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 너무도 보고 싶은 작품을 영화관의 큰 화면과 괜찮은 음향 시설, 그리고 괜찮은 관객들과 본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지금껏 영화관에서 보며 좋았던 기억 보다는 나빴던 기억이 많은 편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슬픈 장면인데 옆 자리에선 키득거리며 웃는다거나 주변의 어떤 행동으로 영화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라거나. 혹은 영화관에서 에어컨을 지나치게 춥게 튼다거나 너무 덥게 한다거나, 등등. 이런저런 나빴던 기억이 많은 편이다.
이러한 나빴던 기억이 불법 다운로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루인의 소유욕이다.
책을 빌려보기 보다는 사서 보는 것, 음악CD를 사면 처음 비닐포장 그대로 보관 하는 행위들은 루인이 즐기는 텍스트들을 소유하고자 하는 일종의 욕망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의 동영상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한땐 DVD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DVD 모으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격 부담도 크거니와 루인이 원하는 텍스트들이 모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그때부터 불법인걸 알면서도 다운로드 받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늘 상 미안한 몸과 어쩔 수 없어 하는 ‘자기 위로’ 같은 몸이 동시에 노는 것을 느낀다.
어제 오늘에 걸쳐, 90년대 초반에 방영되었던 한 애니메이션을 다운 받았다. 어릴 때부터 TV를 싫어했기에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가끔 너무도 보고 싶어 하는 프로가 생기곤 한다(우연처럼 만난다). 이제 모두 받은 애니가 그렇고 애니로 나왔던 <오즈의 마법사>가 그렇다. 물론 이 둘 모두 제대로 못 봤다. 그건 루인이 TV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당시 살던 집에서 루인에게 가했던 ‘탄압'(!) 덕분이었다-_-;;
어제 오늘 받은 동영상의 경우는 특히나 당시의 각별한 사연으로 인해 너무도 보고 싶어 했다. 그랬기에 오랫동안 잊지 못했고 항상 기억 한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그런 애니를 이제야 모두 ‘소유’했지만 아직 볼 상황은 아니다. 편수가 많기 때문이다. 아마 이 애니를 보기까지 한 달 정도는 있어야 할 듯 하다. 중간고사기간에 玄牝에 콕, 박혀 볼 예정이니까.
이렇게 다운받고 CD로 구워서 보관하고 하는 것은, 어쩌면 그 시절에 대한 어떤 기억을 붙안고 싶어서 인지도 모른다. 그때 이루지 못한, 그럴 용기가 없어서 속으로 앓다가 이렇게 아쉬워하고 있는 오늘에 대한 기억을 반영구적이라는 저장매체에 보관하고 필요할 때 다시 꺼내보고 싶어서 인지도 모른다. 알고 싶어 다가서는 순간 변화하는 휘발적인 삶/세상에서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이런 텍스트들이라는 믿음. 물론 이런 믿음은 언제나 배신하는데, 몸에 남아 있는 장면과 다시 봤을 때의 장면이 너무도 달라 적잖아 당황하고 괜히 다시 봤다고 아쉬워한 기억은 얼마든지 있다.
극장에 가지 않는 것, TV를 사지 않고 나스타샤랑 노는 것은 루인이 최대한 즐겁게 텍스트와 만나기 위한 한 방법이다(그래서 5.1채널이다). 동시에 어떤 텍스트를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텍스트도 고정시킬 수는 없다. 루인 자신이 유동하듯 텍스트를 만나는 순간, 그 순간의 시공간적인 유동성 때문에 매번 다른 텍스트를 만난다.
그래서 어제 오늘 새로 만난 텍스트들과 만나길 조금은 두려워하고 있다. 그 당시의 보고 싶어 했다는 갈망, 그 시절의 애틋함 혹은 아픔, 그런 몸들을 그냥 기억의 왜곡 속에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 그럼에도 볼 것이다. 새로운 자신과 만나는 것은 몸속에 묻어 둔 기억을 꺼내 그것을 배반하고 새로운 몸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로인해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의 몸이 더 풍성해질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