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혹적인 목소리

새벽, Beth Gibbons의 목소리에 잠이 깨었다. 한없이 절망적이고도 달콤한 목소리.

MD를 사용하기에, 특별히 아끼는 한 장의 MD 디스크엔 이런 날 들으면 좋을 앨범들이 들어 있다. Themselves 두 곡, Nina Nastasia 앨범 세 장, Beth Gibbons 독집, Portishead 두 장. 이렇게 담아둔 디스크는 여직 한 번도 바뀐적이 없다.

Nina Nastasia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한없이 달콤하면서 절망적인 목소리. 그래서 듣고 있으면 황홀하게 죽음으로 이를 수 있을 것만 같은 환각. 그렇게 잠이 들었다. 몸은 길 잃어 헤매고 멀리서 음악 소리만 들려왔다.

그런 새벽, Beth Gibbons의 매혹적인 목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다. 너무도 달콤해서, 설탕을 입힌 독약 같았다. 자꾸만 먹게 되는 달콤함, 온 몸에 퍼진 독으로 다시는 깨어날 수 없는 중독.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다시 듣고 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빗소리에 함께 울음이 묻어나는 웃음을 듣는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누군가 죽여줄 것만 같은 매혹에 빠진다. 바란다.

나의 침울한

불안하고 설레고 우울하고 두근거리는 몸을 앓고 있다.

다시는 이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 이런 몸을 기억하는 몸이 옛 몸을 불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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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황인숙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