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퀴어 우생학..

질병 논의와 장애 논의와 트랜스젠더퀴어 논의는 언제나 정확하게 붙지는 않는다. 뭔가 잘 붙을 것 같은데도 참 안 붙는다. 질병이나 아픔이 곧 장애 경험은 아니며, 모든 장애가 질병이나 아픔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몸의 규범성을 논하는 측면, 역사적으로 취급 받은 형식 차원에서 유사하다고 해도 장애와 트랜스젠더퀴어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교차성을 고민하고, 교차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기 위한 노력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또 의외로 많은 지점에서 교차성 논의를 전개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우생학이 그렇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우생학은 트랜스젠더퀴어나 LGBT/퀴어와 장애가 긴밀하게 얽히는 순간을 재현한다. 그럼 우생학을 통해 장애퀴어 논의의 어떤 순간을 모색할 수 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시도해볼만 한 작업이다. 당연히 누군가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지만 어쨌거나 얕은 수준에서라도 시도를 해보면 흥미로울 내용이다.
뭐, 언젠가 하겠거니…

퀴어 우생학

요즘 우생학 강좌를 듣고 있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한국에서 장애학과 우생학의 교차성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반면 LGBT/퀴어 연구와 우생학의 교차성 연구는 활발하지 않은 듯하다. 물론 내가 몰라서 그렇겠지만.
우생학이 사회에서 정상 혹은 지배 규범에 부합한다고 여기는 몸만을 재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비규범적 존재를 삭제시키는 작업이라고 해석한다면 트랜스젠더퀴어와 인터섹스에게 요구하는 몸의 규범적 형태는 우생학적 판단이라고 독해할 수 있다. 인터섹스가 태어나면 몇 개월 안 지나 비인터섹스여성 혹은 비인터섹스남성으로 수술시키는 기획 자체가 우생학이라고 지적하는 글을 읽으며 확장한 고민이다. 몸의 규범성을 다시 논하도록 하는 고민인데 현재 고민은 딱 여기까지.
내가 우생학을 얼마나 더 고민하고 관련 논의를 전개하려고 애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려나 누가(!!!) 한국에서 퀴어 우생학으로 연구를 해주면 정말 기쁠 듯하다. 대체로 이런 바람을 품으면 결국 이런 바람을 품은 사람이 하게되는 문제(ㅠㅠㅠ)가 있지만 퀴어우생학은 꽤나 매력적인 주제니까, 누군가가 해주겠거니 기대를 품는다.
(울해 중으로 우생학을 언급하는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지만 현실은… 호호호. 암튼 누가 좀 해주세요!)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 그리하여 새로운 퀴어는 태어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라는 말. 그러니까 LGBT/퀴어의 삶을 설명할 때 자주 ‘이렇게 태어났다’라고 말하고 타고났기에 차별해선 안 된다는 논리를 사용한다. 기독교 근본주의 집단의 길원평 씨도 그의 책에서 ‘동성애가 타고난다면 차별할 수 없기에 타고났다는 논리를 반박한다’고 했다.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면 그 말의 정확한 의미는 유전자 구조 어딘가에 성적 선호/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을 결정하는 인자가 있음을 뜻한다. 타고난다는 말은 단순히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는 막연한 의미가 아니라 내 몸에서 그것을 결정하는 인자가 있기 때문에 타고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다른 말로 1973년에 정신병 진단 목록에서 동성애가 삭제되었기에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라고, 폭넓게 말해서 의료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언설이 많다. 이런 인식은 트랜스젠더퀴어 운동과 동성애 운동이 갈라지는 중요한 계기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동성애자로 태어났다’와 같은 언설은 의료기술의 인증을 다시 한 번 요청한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다’는 말은 내 몸 어딘가에 내 동성애 정체성을 결정하는 인자가 있다는 발언이다.
다른 말로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라는 말은 LGBT/퀴어가 치료될 수 있고 전환 치료를 받을 수 있음을 강하게 함의한다. 더 직접적으로는 앞으로 LGBT/퀴어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특정 유인을 정확하게 발견한다면, 산전 검사에서 부모는 선택할 수 있다. 산전 검사에서 태아에게 다운증후군이 있다고 진단이 될 경우 거의 90%의 부모가 낙태를 선택하듯 ‘태아에게 트랜스젠더퀴어 유전자가 있다고요? 그럼 낙태하겠어요’라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라는 말은 그렇게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 말은 낙태, 선택권, 우생학, 의료 기술 개입, 사회문화적 태도 등이 복잡하게 얽힌 언설이다. 그리하여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란 말은 차별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발화가 아니라 차별을 더 위험한 방식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발화다. 선택이냐, 생득이냐란 논의는 삶을 불가능하게 할 뿐이다.